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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53) 소리로 먹는 ‘차돌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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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53) 소리로 먹는 ‘차돌박이’
  • 손영한
  • 승인 2024.01.1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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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지 직~~ 지방과 고기가 적당히 섞여있는 차돌박이가 불판 위에서 구워지며 나는 소리이다. 삽시간에 오그라붙어 앞·뒤 한 번씩 구우면 바로 먹는데 부드러운 지방과 육질의 조화가 입에서 춤을 춘다. 고소한 맛의 절대 강자! 담백한 간장소스가 어울리지만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사람도 있고 고추냉이를 같이 넣어 즐기는 식도락가가 많다.

지역에 따라 차돌백이라고도 부른다. 양지 부위로 기름기가 많고 근육 사이에 있는 지방으로 가장 단단하고 질긴 부위로서 지방이 박혀있는 모습이 차돌과 같다 하여 붙여진 명칭인 것 같다. 썰어놓은 차돌박이의 살코기 부분은 선홍색의 투명하고 선명한 색을 띠고, 하얗고 상앗빛이 나는 지방은 깔끔하기 그지없다. 아주 하얗다. 때로는 불고기처럼 간장 양념이 깔려있는 쟁반 위에 소복이 쌓아놓아 느끼한 맛을 잡아주는 조리방법도 있다.

맛의 풍미와 식감을 위해 얇게 썰어서 놓은 모습은 돌돌 말려있어 모양이 예쁘고, 가열된 불판에 올려놓으면 원통 모양이 펴지면서 비주얼이 전·후가 크게 변하는 게 재미있다. 소의 뱃살 부위로 지방의 탄력이 쫀득쫀득하여 씹는 맛이 고소하고 달큼하다. 이것이 불판에 올려지면 용트림하듯 근섬유 지방이 오그라들고 기름기가 좌르르 돌면서 풍성한 맛을 내게 된다. 얇고 기름기가 많아서 불판 위에 올려두면 순식간에 익는데 5초도 안 걸리는 속도여서 젓가락을 대면서 집중해서 먹어야 찐 맛을 느낄 수 있다. 늦으면 다 녹아(?) 없어진다.

신선한 차돌일수록 선홍색과 하얀색이 선명하고 잡내가 없다. 손질된 두께에 따라 맛의 차이가 있어 마니아들은 자기만의 방식을 고집한다. 두껍게 손질한다면 적당한 숙성과정을 거치면 질긴 식감을 피할 수 있다. 여기에 양념간장(파, 고춧가루 등)에 찍어 먹으면 느끼한 맛이 줄어 여러 접시를 비울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차돌 전문점은 이러한 이유로 된장찌개를 신경 써서 만들어 깔끔한 맛으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한다.

차돌박이는 고기의 육즙보다는 고소하고 진한 맛으로 먹는 부위여서 식도락가들은 참기름과 소금만으로 찍어서 ‘차돌육회’로도 즐기는 데 아삭아삭한 지방의 맛이 일품이다. 여기에 소금과 고추냉이를 넣은 ‘차돌초밥’이나 ‘차돌박이 숙주무침’은 새로운 맛의 퓨전 요리로 인기가 높다.
 

'봉산집 본점'
'봉산집 본점'

 

나의 오래된 차돌박이 단골집이 삼각지에 있는 ‘봉산집’이다. 감히 ‘차돌구이 성지’라고 말할 수 있는 노포로 차돌만 판다. 과거 근처에 국방부와 육군본부가 있어서 손님의 반이 군복무자로 항상 붐비고 성황을 이루었다. 이제는 육군본부 등이 이전하여 손님이 줄을 법도 한데 예상과 달리 직장인들로 항상 북적거린다. 이집 차돌박이는 국내산으로 색깔과 신선도가 매우 좋아 꼬들꼬들하고 쫄깃 고소한 식감이 뛰어나고 곁들이는 대파 간장소스는 잘 어울리는 동반자 역할로 맛을 받쳐주는 노릇을 톡톡히 하며, 길게 썬 양배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비교적 얇게 손질되어 있어서 한눈을 팔다가는 쪼그라들어 원래 크기의 절반도 되지 않아 괜히 손해 보는 듯하다. 각자가 하나씩 구워 먹어야 맛있는 차돌구이가 된다.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이기도 한 차돌이 들어간 ‘막장찌개’는 텁텁해진 입을 깔끔하게 해주므로 밥을 말아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 요사이 많은 노포 식당이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아 내심 조마조마한 마음이다.
 

‘부농정육식당’
‘부농정육식당’

 

송파 삼전동에 ‘부농정육식당’이 있다. 오래된 집은 아니지만 나름 지역 명소가 되었다. 이곳 차돌박이도 한우를 취급하는 곳으로 취향에 맞게 차돌박이 굵기를 맞춰 썰어준다. 도톰한 굵기의 씹는 식감을 좋아하는 분을 위해 특별 주문할 수 있는 식당으로 다른 특수부위 쇠고기도 있어 한우백화점 같다. 봉산집 차돌구이와 달리 두 배 두꺼운 차돌구이로 차별화한 것이 특색 있다. 이 식당은 주문하면 입구에 있는 저장고 앞에 여주인이 직접 고기를 손질해 준다. 차돌박이는 자동 기계에 넣어져 슥슥 잘려 나오면 상앗빛의 지방이 무게감 있게 보인다. 아마도 두께 때문일 것 같은 데 묵직한 맛이, 소주와 함께 천천히 곁들일 수 있는 오래된 친구와 어울린다.

사실 차돌박이를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방이 많이 붙어있어서 어른들이 먹는 음식으로 생각했다. 어느덧 나이가 들어서 차돌구이의 굽는 소리가 좋아졌다. 식욕을 돋우는 경쾌한 소리 - ‘찌지직’~. 그래서 나는 불판이 달구어졌을 때 차돌 한 점을 올려 구워지는 소리를 듣는다. 짧은 CM송같이 잘 만들어낸 짧은 시간의 여운... ‘5초간의 미(味)학’ 이랄까? 교향곡이 부럽지 않은 나만 느끼는 음식 소리이다. 그래서 소리로 먹는 음식이 아닐까 생각된다.

유독이도 눈이 많이 내리는 올겨울, 소리 없이 눈이 쌓여가는 밤에 숯불 불판 위에 차돌박이의 맛깔스러운 굽는 소리를 들으며, 나처럼 차돌박이 맛을 늦게 배운 오랜 친구와 묵직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글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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