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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 ‘조개의 여왕’ - 백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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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 ‘조개의 여왕’ - 백합
  • 손영한
  • 승인 2023.02.1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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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한의 서울맛 인생맛 ㉝

백합조개는 흰빛을 띤 회백갈색 또는 암갈색으로 안쪽은 흰색의 매끄러운 껍질로 보호되어 있으며 다른 조개에 비해 크고 잘생겼다.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조개로 인지도가 떨어지지만 상당히 고급스러운 조개이다. 백합은 주로 전북 심포, 부안이 최대 산지였으나 새만금 방조제로 간척 사업이 진행되면서 채취량이 눈에 띄게 감소하여 이제는 변산반도 이남 지역 갯벌에서나 볼 수 있는 실정이다. 심포항 주변의 식당들은 거의 백합 요리를 하는 곳이었으나 이제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 넓은 갯벌이 없어지고... 이로 인해 서울과 수도권에서 맛볼 수 있는 백합은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한 것으로 보면 된다. 국내산과는 맛과 향에서 비교가 되지 않으며 귀한 조개이다 보니 원가 자체가 비싼 탓에 산지에서도 제법 가격이 높은 요리이다.

백합에는 다양한 영양소가 풍부해서 건강을 챙기는 데 제격이다. 특히 타우린, 아미노산이 많이 들어있어 간 기능을 개선하고 보호하는 효과가 있으며 본초강목에는 신진대사를 높이는 음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백합은 ‘조개의 여왕’으로 불리고 있다. ‘조개의 황제’인 전복에 버금가는 고급 조개로서 백합회, 죽, 탕, 구이, 백합찜 등으로 조리되며, 껍데기는 약품용기나 바둑의 흰돌로 이용되기도 한다.

백합은 탕으로 끓여 내는 국물요리를 먹었을 때 백합의 진한 맛, 즉 국물의 향과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요리이다. 백합탕은 무, 대파만 넣고 끓여도 시원하며 조개를 넣은 후 입이 딱 벌어지면 백합탕 완성! 속살은 쫄깃하고 부드러우며 크기도 씨알이 좋고, 식감도 다른 조개와 달리 풍부한 맛과 한 점 한 점의 하얀 조갯살의 우아함이 패중지왕이라 하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백합구이는 양념 없이 있는 그대로 백합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요리이다. 백합은 국물이 생명이므로 육수가 새지 않도록 은박지에 한 개씩 따로따로 싸서 조리한다. 먹을 때 은박지를 벗기면 ‘툭’ 하고 조개 입이 열리면서 하얀 속살이 드러나는 모습이 재미있고 식욕을 돋운다. 게다가 은박지에 남아있는 뽀얀 국물의 맛은 입맛을 감동시키는 데 으뜸이다. 짭조름한 맛은 바다 속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고, 그 향은 머리가 탁 트이는 판타지와 같은 별천지를 느끼게 하여 나는 백합구이를 제일 좋아한다. 너무 코(?)박고 먹어서 은박지에 입술이 베인 적도 있다.

자연산 백합회를 먹어 보았는가! 갓 잡은 백합은 현지에서 생으로 먹기도 하며 미식가들은 이것을 생합이라고 부른다. 백합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회로 먹는 조개는 전복을 빼고는 아마도 백합이 으뜸으로, 맛은 상큼하고 향기롭다. 회의 맛 표현이 쉽지 않으나 날 것이 다 그러하듯 참신하고 깨어있는 맛이라 할까? 달콤, 상큼, 쫄깃한 맛의 조합으로 바이올린 선율 같은 리듬과 느낌을 주는 오묘한 맛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일부는 조개 비린내를 느낄 수 있으나 맛에 비해 용서가 된다.

백합 요리의 백미는 죽에 있다. 백합 육수에 조갯살을 잘게 썰어 다진 다음 식당에 따라 찹쌀, 녹두, 흑미 등을 넣어 백합죽을 만든다. 다른 죽에 비해 담백하면서 도망간 입맛을 확 잡아당기는 매력이 있다. 아무 것도 올리지 않고 먹어도 좋으며 백합 본고장의 곰소젓갈을 곁들이면 맛을 더한다. 역시 백합죽은 우아하고 품위 있는 음식으로 누구든지 속 편히 먹을 수 있어 좋다. 지금 이 순간에도 먹고 싶어 군침이 돈다.

옛날 지방 출장을 마치고 귀경길에 김제·심포에 들러 서해바다를 보면서 자연산 백합회와 구이를 직장 동료들과 함께한 추억이 있다. 이때의 추억이 없었다면 나는 백합을 모르고 지냈을 것을 생각하니 끔찍하다. 오래전에는 익산에 사는 지인이 심포의 생백합을 보내온 적이 있는 데 회로 먹기 위해 망치로 부숴서 먹은 기억이 있다. 조개 손질법을 몰라 벌어진 일이며 맛있는 국물은 다 새고 온 집안이 난리가 난 적이 있다. 결국은 탕으로 끓여서 먹었지만 이제는 접할 수 없는 옛이야기가 되었다.

 

'백합이야기'
'백합이야기'

 

서울에도 백합 전문점이 여럿 있었으나 긴 코로나 영향으로 적지 않은 집이 문을 닫아 아쉽다. 교대역 근처에 백합구이, 탕을 하는 ‘너와집 백합이야기’가 있다. 백합구이는 한 개씩 싸여있는 알루미늄 포일을 벗기면 백합이 폭 열리고 야들야들한 조갯살이 제법 커서 씹히는 식감도 좋고 국물도 맑으면서 개운하여 맛이 좋다. 쫄깃하면서 담백한 맛이 좋아 백합 한 개에 소주 한 잔이 그냥 들어간다. 한 개씩 싸여 있는 모습이 동글동글한 조약돌 같아서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백합탕의 남은 국물에 칼국수를 넣어 끓여 먹으니 속도 든든하다. 백합 자체가 비싼 조개여서 가격이 만만치 않다. ‘한강로 칼국수 선릉점’은 국물맛이 시원한 백합 칼국수가 별미이다.

현지 부안군에 ‘계화회관’이 있다. 백합 요리의 대가로 지역에서는 유명한 식당이다. 오래전부터 백합죽을 잘하는 집으로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에는 주인장의 오래된 손맛이 스며있어서 좋다. 죽에 당근, 파 등을 넣지 않는 점이 다른 식당과 다르다. 백합 고유의 맛과 향을 그대로 살리려는 주인장의 마음이 엿보인다. 죽이라는 소박한 음식에, 달고 고소하고 담백하고 개운함을 모두 느끼게 하는 오묘한 세련된 맛을 담을 수 있음에 고마움을 느낀다. 밑반찬으로 제공되는 갈치 속젓을 곁들이면 다른 맛의 요리가 되어 추천할 만하다. 백합 구이도 산지의 신선함과 큼직하고 은근한 단맛이 들어있어서 고급스러운 조개를 느끼게 한다. 산지인데도 가격이 싸지 않아 새만금 간척사업이 조금은 원망(?)스럽다.

이제는 자연산 백합을 찾기가 쉽지 않다. 대규모 간척 사업으로 아마도 몇 년 후면 영원히 자취를 감출지도 모른다. 백합회를 맛본 지가 십 년은 넘은 것 같아 내 맛 기억 저 멀리에 있으니 올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맛보기를 기대해 본다.
 

글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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