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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더링(fathering) 위기’의 시대를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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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더링(fathering) 위기’의 시대를 사는 법
  • 김종면 논설주간
  • 승인 2018.10.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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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경제 오가닉라이프신문 김종면 논설주간]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아버지가 없는 자는 스스로라도 아버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가 있어야 하는 이유는 새삼 얘기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없는 아버지를, 그것도 스스로 어떻게 만든단 말인가. 상상의 세계에서 아버지의 이미지라도 그려 보라는 것인가. 아버지 같은 사람, 파더 피겨(father figure)라도 구해 보라는 것인가. 분명한 것은 아버지가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아버지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스스로 아버지가 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파더링(fathering)이라는 말이 실감으로 다가오는 요즘이다.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파더링은 마더링(mothering)이라는 말이 따뜻함, 안정감 등의 뉘앙스를 지니고 있는 것과는 달리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느낌을 준다. 본질적인 차이는 아니다.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파더링은 얼마든지 부드럽고 편안한 것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파더링의 위기’ 속에 살고 있다. ‘아버지의 부재’라는 시대의 질병을 앓고 있다.

양육비를 안 주는 ‘나쁜 아빠’ 문제가 공론화의 도마에 올랐다. 육아정책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 10명 중 6명이 전 배우자로부터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2015년부터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건강가족진흥원에 양육비이행관리원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양육비 협의를 주선하고 소송과 추심을 돕는다. 여가부가 이 제도를 통해 대신 받아낸 양육비가 지난 3년간 275억원이다. 하지만 재산을 숨기고 소득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주소를 옮기며 도망 다니는 경우 양육비를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양육비 이행을 강제하기 위해 보다 강력한 정책적 수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런 배경에서 정부는 지난 28일부터 양육비를 안 주면 당사자의 동의 없이도 소득이나 재산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양육비를 받지 못해 생활고를 겪는 가정을 대상으로 하는 ‘한시적 양육비’ 지원에 한한 것으로, 지원 기간도 현행 최대 9개월에서 12개월로 늘렸다. 정부는 이에 더해 양육비를 안 주면 운전면허를 취소하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법원의 판결을 받고도 양육비를 주지 않는 아빠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사이트도 열렸다. “아빠의 초상권 보호보다 아이의 생존권이 더 우선되어야 할 가치”라는 게 사이트 운영자의 말이다. 양육비 재판에서 이겨 지급 판결이 나도 재산을 빼돌리는 일이 많아 받아내는 양육비는 미미하다. 실제로 돈을 받은 이행률은 지난해의 경우 32%에 불과하다.
 

양육 책임을 떠넘기고 오불관언하는 이른바 '히트 앤드 런'(Hit and Run)에 대해 외국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우리가 흔히 선진국이라 부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대부분 강력한 제재를 가한다. 양육비 지급을 단순한 채권-채무 관계가 아니라 '아동복지'와 직결된 중대 문제로 보기 때문이다. 미국은 1984년 개정된 자녀양육비이행법에 따라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급여에서 양육비를 강제로 공제한다. 양육비 채무자가 돌려받아야 할 세금에서 양육비를 먼저 떼어내고 돌려주는 ‘연방 세금환급 차감 프로그램’을 통해 매년 20억 달러(약 2조원) 이상의 양육비를 추심한다. 주 정부의 양육비 강제이행을 돕기 위해 부모의 위치를 파악하는 '연방 부모위치탐색서비스'도 시행하고 있다.

독일은 국가가 나서 양육비 청구를 대리해주고, 양육비 문제가 해결에 이르지 못할 경우 국가가 선(先)지급해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일단 국가가 양육비를 지원해주고 나중에 양육비 채무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독일은 1979년 양육비선급법을 제정해 12세 미만의 자녀와 함께 살지 않는 부양의무자가 의무를 다하지 않을 경우 아이들이 정부로부터 기본적인 생계비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했다. 독일 이외에도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OECD 회원 31개국 가운데 18개국에서 국가가 양육비를 선지급하고 구상권을 행사하는 제도를 시행중이다. 우리나라는 17대 국회(2004∼2008년)부터 양육비 선지급제도를 입법화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재정부담 등의 이유로 추진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뉴질랜드에서는 1992년부터 국세청이 양육비 이행지원 업무를 직접 맡고 있어 소득이나 재산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국세청의 양육비 이행 강제조치는 지방법원의 민사소송 판결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 양육비를 내지 않으면 엄청난 체납 연체료가 붙는다. 호주에서는 양육비 이행 담당관이 채무자에게 출국금지 조치까지 내릴 수 있다. 영국은 2008년 자녀양육비이행확보위원회를 만들어 양육비를 거둬들이고 있다.

이혼이나 별거, 유기, 미혼모 등으로 홀로 아이를 키우는 한부모 가구가 점점 늘고 있다. ‘나쁜 아빠’ 문제는 한층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아이의 양육은 뒷전이고 자신만의 삶을 즐기는 ’나쁜 엄마’도 물론 없지 않다. 나쁜 아빠든 나쁜 엄마든 ’부모 됨‘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상처받은 아이에게 또 다시 상처를 안겨주는 잔인한 일은 벌이지 않을 것이다.

파충류는 부성(父性)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다. 새끼들을 방치한다. 반면에 대부분의 조류는 수컷과 암컷이 함께 둥지를 짓고 새끼를 키운다. 타조나 펭귄의 수컷은 알의 부화를 전적으로 책임지기도 한다. ‘양육비와의 전쟁’을 벌이는 인간을 비웃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굳이 법으로 양육비를 강제할 이유가 없다. 사람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아무리 서슬 퍼런 법의 칼날을 들이대도 만사휴의다. 이제 선택하고 실천하는 일만 남았다. 보다 깊고 유연한 파더링, 또한 마더링을 내면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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