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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역할의 의미에 대한 소고, 단편 영화 ‘소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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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역할의 의미에 대한 소고, 단편 영화 ‘소화기’
  • 백종국 기자
  • 승인 2018.08.01 0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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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경제 오가닉라이프신문 백종국기자]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가끔 단편 영화를 보게 된다. 단편 영화는 장편 영화에 비해 장대함이나 재미는 적지만 삶의 한 단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데에서 묘미가 느껴진다.

얼마 전 우연히 접한 단편 영화는 신진감독인 신서원 감독의 ‘소화기’라는 작품으로, 큰 사건의 전개 없는 잔잔한 진행에도 불구하고 삶의 한 진실을 과감하게 들춰준 영화로 뇌리에 남았다.

우리나라 영화계에서는 버스킹을 다룬 영화를 수입, 개봉하여 짭짤한 재미를 보았는데 이 영화는 버스킹 생활을 하는 가수지망생인 여주인공의 일상을 잔잔하게 그려냈다. 얼터너티브 록 밴드 POE의 보컬이자 키보드주자인 물렁곈(윤영주)이 싱어송라이터를 꿈꾸는 주인공 ‘여명’ 역을 맡아 관심을 모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역할을 맡아 삶을 영위해간다. 특히 특정한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역할을 맡는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므로 젊은이들은 이의 성취를 위해 노력하고 방황하기도 한다. 하지만 너무 심하면 꿈은 오히려 삶을 옥죄는 굴레와 고통이 되기도 한다.

주인공인 ‘여명’의 삶 또한 자신의 굳건한 꿈으로 인해 신산하다. 가수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가족의 기대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며 여러 기획사에 데모 음반을 들이밀지만 세상은 그리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사람만이 아니라 사물 또한 그에 맞는 역할을 담당하며 세상에 존재한다. 그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정해준 것이지만 그들의 역할이 애초의 그것에 한정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영화에서 의인화된 여러 사물들 간의 대화는 그렇게 우의적이지만은 않다. 역할의 실상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는 것이다.

영화의 표제가 된 사물인 ‘소화기’는 원래 불을 끄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한 번도 불을 꺼보지 못 했다. 그렇지만 주인공에게 멋진 노래를 만들어 부를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더 멋진 존재가 되었다. 마지막에 불이 났을 때에 그 불을 끈 것도 소화기가 아닌 마요네즈였다. 주방에서 드레싱에 사용되는 마요네즈가 새로운 역할을 찾은 것이다.

소화기는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그 이전에 버려지는데 이는 인간의 이기심을 드러내는 한편 ‘역할’이라는 게 언제든 용도 폐기가 가능한 것임을 암시한다. 영화의 조연인 ‘구희’는 물건들을 중고로 팔아 사물의 역할을 연장시키는 사람으로 나온다. 다른 면에서는 역할에 안 맞으면 과감히 물건을 폐기처분하는 냉혈인이다.

주인공은 소화기에 이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인 건반악기를 잃게 되고 이로 인해 자포자기와 절망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 뜻밖에 새로운 역할이 주어지는 찰라와 마주하게 된다. 더 이상 얘기하면 스포일러가 되므로 직접 확인 바란다.

이 영화는 오는 8월 9일 막을 올리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단편 영화 부문에 출품되어 관객들을 만난다(8월 11일 오후 3시 반, 13일 오전 10시 메가박스 제천5관에서 상영된다).

지금도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꿈을 위해 땀과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들에게 꿈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하다 보면 다른 역할이 주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자신의 꿈을 이룬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 영화는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심심(甚深)한 위로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세상의 대다수 주인공은 바로 후자가 아닐 수 없다.
 

 

사진은 영화 '소화기'의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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