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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 규제’와 ‘국가주의’라는 이름의 코미디
  • 김종면 논설주간
  • 승인 2018.07.31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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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닉라이프신문 김종면 논설주간] 조선의 21대 왕 영조는 83세까지 살아 조선 최장수 왕의 기록을 세웠다. 무수리 출신인 어머니의 건강을 물려받아 강인한 체력을 지닌 영조는 식사를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챙겨먹었다고 한다. 심지어 회의를 하다가도 식사시간이 되면 일단 밥부터 먹고 나서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평소 검소했던 영조는 하루 다섯 번 하던 식사 중에서 오식(午食)과 야식(夜食)을 줄여 하루 3회로 제한했다고 한다. 역시 소식과 규칙적인 식사가 건강 유지의 비결임을 알 수 있다.

‘왕처럼 먹고 왕처럼 살라’고들 한다. 하지만 최고의 건강관리 시스템 하에 최고의 음식문화를 누리던 왕처럼 살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의 조력도 기대할 것 없는 장삼이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스스로 식욕을 다잡고 절제를 내면화하는 것뿐. ‘남식(濫食) 권유하는 사회’라고 할까.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먹방’(먹는 방송) 규제 논란은 우리 사회가 그동안 얼마나 표피적이고 상업주의적인 음식문화에 무방비로 노출돼 왔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6일 갈수록 심각해지는 국민 비만율을 낮추기 위해 교육부 등 관계부처와 합동으로 ‘국가 비만관리 종합대책’(2018∼2022)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2022년 41.5%로 추정되는 비만율을 2016년 수준인 34.8%로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비만율을 줄이기 위해 폭식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먹방을 규제하고 식욕을 자극하는 광고도 관리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국가가 개인의 영역에 개입하는 것은 명백한 사생활 침해로 국가주의적 발상이라는 주장과 막대한 사회경제적 손실을 야기하는 비만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30일 국회에서 열린 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우리가 그야말로 어리석은 백성도 아닌데 어떻게 먹방에 대해 규제하고 또 가이드라인을 정하겠다고 하는 거냐”며 “먹방 규제는 국가주의적 문화”라고 비판했다. “얼마나 국가주의 문화가 오래되고 그 속에서 깊이 살았으면 이런 문제에 대해 담담히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겠느냐”는 말도 했다. 먹방이라는 ‘국민친화적’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 자체를 뭐라 할 것은 없다. 정부가 엄청난 ‘시대역행 죄’라도 저지른 듯 예의 국가주의 잣대를 들이대며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볼썽사납다. 김 위원장은 탄핵정국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의해 국무총리로 내정됐다가 흐지부지돼 웃음가마리가 됐을 때도 “소멸”이니 “존재”니 형이상학적인 단어를 써가며 “나한테 (거취에 대해) 질문할 이유가 없다”는 둔사를 늘어놔 눈총을 산 일이 있다. 그는 먹방 규제를 국가주의의 대표 사례로 여기는지는 모르지만 적잖은 국민에게 그것은 한갓 정치공세로 비칠 뿐이다. 무엇을 위한 국가주의 논쟁인가.

규제는 그 자체로 선도 악도 아니다. 규제가 나쁜 게 아니라 나쁜 규제가 나쁜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비만은 ‘질병’이며, 개인을 넘어 국가적인 문제로 부상한 만큼 이제는 보다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고도비만율에서 세계 최고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고도비만 인구가 2016년 5.3%에서 2030년 9.0%로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남자 아동·청소년 비만율은 26%로 OECD 평균 25.6%을 이미 넘어서는 등 곳곳에서 적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비만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은 2006년 4조8000억원에서 2015년 9조2000억원으로 최근 10년간 두 배 가까이 늘어 갈수록 피해가 커지고 있다.

‘국민의 비만화’ 현상을 먹방과 곧바로 연관 짓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각종 매체에서 내세우는 먹방이 고열량·고지방 음식으로 꾸려진 식단을 소개하거나 폭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다반사인 만큼 국민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소지가 없지 않다. 언젠가부터 방송은 예능 프로그램이 점령하다시피 했다. 먹방이 그 한 축이다.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케이블 할 것 없이 예능프로그램 태반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먹는 것과 연결돼 있다. ‘곱창 여신’, ‘먹방 크리에이터’ 같은 신조어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행하며 국민의 식욕을 자극한다.

정부가 나서기 전에 방송사가 국가적 과제로서의 비만대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자율적으로 무분별한 먹방을 규제하는 방안을 강구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에 섭섭잖은 시청률을 건질 수 있는 ‘먹방의 유혹’을 방송사 스스로 떨쳐내기를 기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먹방 규제와 관련해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아쉬움은 있지만 국민 건강에 신경을 써야할 정부가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먹방의 순기능을 확산시키고 보다 건강한 먹방으로 자리 잡도록 도와주는 구실을 한다면 무작정 외면할 일만은 아니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이라는 그로테스크한 거인 이야기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라블레는 작품 속에서 음식 이야기를 즐겨 다룬다. 라블레의 소설에는 먹을 것이 풍성하다. 등장인물들은 거의 예외 없이 대식가다. 그들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엄청난 양의 소시지며 내장 요리들을 앞에 놓고 흐뭇해한다. 이식위천(以食爲天)이라고 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은 언젠가 자신의 건강 비결로 탄산음료와 감자스틱, 그리고 초콜릿 칩 아이스크림을 꼽은 적이 있다. 우리가 ‘정크푸드’라고 부르는 음식들이다. 버핏은 한 인터뷰에서 “내가 하루 2700㎉를 소비한다고 가정하면 그중 4분의 1은 콜라를 통해 얻는 셈”이라며 “하루에 적어도 다섯 캔은 마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의학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다. 세계 최대 탄산음료 회사의 대주주이니 그의 ‘탄산음료 예찬론’은 물론 마케팅전략일 수도 있다. 나이가 아흔이 다 되도록 수퍼 시니어로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원천이 탄산음료라니….

먹방이 아무리 스트레스 해소에 맞춤한 폭식 장면을 보여주든, ‘라블레의 후예’들이 미식의 향연을 벌이며 흡족한 표정을 지어보이든, 불세출의 투자가 버핏이 ‘나는 4분의 1이 콜라로 되어 있다’고 흰소리를 치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다. 먹방은 마땅히 그런 차원에서 만들어지고 향유돼야 할 것이다.

각종 미디어 아울렛에는 형형색색의 먹방이 넘쳐난다. 하지만 그것을 얼마나 철저히 모니터링하고 신뢰할 만한 정보를 신청자들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해 왔는가.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방송사나 플랫폼 사업자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간섭’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법적 강제력을 갖지 않는 한 ‘규제’로만 생각할 것은 아니다. 먹방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의료계의 우려와는 사뭇 결이 다른 일부 정치권의 정략적 ‘먹방 국가주의’ 논란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비만의 제국’은 더 이상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비만의 예방과 관리를 통해 국민의 건강한 삶을 구현하는 일을 국가주의로 규정해 일거에 내치려 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국가주의는 그런 데 쓰라고 생긴 말이 아니다.

김종면 논설주간  magazineplus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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