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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적 상상력과 반려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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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적 상상력과 반려식물
  • 김종면 논설주간
  • 승인 2018.03.13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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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경제 오가닉라이프신문 김종면 논설주간] 식물적 상상력이란 무엇인가. 범박하게 말해 식물과의 동행을 꿈꾸고 식물의 강인한 생명력을 함께 나누며 식물을 닮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들 중에는 이런 식물적 상상력이 특히 돋보이는 이들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프랑스 현대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다. 그의 처녀작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에서 외딴 섬에 갇힌 로빈슨 크루소는 대지와의 성적 결합을 통해 ‘만드라고라’라는 식물을 탄생시킨다. 그런가 하면 ‘레 메테오르’에서 드보라라는 여인은 정원을 가꾸다 죽지만 땅에 묻힌 뒤 다리는 뿌리가 되고 머리카락은 잎이 되고 몸은 줄기가 되어 정원 자체로 다시 태어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식물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씨앗을 퍼뜨리는 일이다. 투르니에는 ‘동물과 식물’이라는 짤막한 철학에세이를 통해 식물이 씨앗을 멀리 보내기 위해 얼마나 힘겨운 노력을 하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보리수의 포자는 공중에서 작은 헬리콥터처럼 빙글빙글 돈다. 어떤 선인장 열매는 폭탄처럼 터진다. 우엉의 두상화(頭狀花)처럼 동물의 털에 달라붙어 이동하는 식물도 있다. 과일 안에 씨를 숨겨 놓았다가 동물이 그것을 먹고 배설하도록 해 씨앗을 전파하기도 한다.

우리 문학계에서 식물적 상상력을 빼어나게 구사하는 작가로는 단연 이승우가 꼽힌다. 그의 소설 ‘식물들의 사생활’은 한 가족 내에서 벌어지는 사랑의 좌절과 고통을 식물적 교감으로 승화시켜가는 과정을 그렸다. 이 작품에서 나무는 사람처럼 사랑의 열매를 맺고 바다를 건너 고향에 다녀오기도 한다. 나무가 사람이고 사람이 곧 나무인 초월의 경지다. 동물성의 욕망을 뛰어넘는 식물성의 도저한 사랑, 그것은 바로 식물적 상상력이 길어 올린 소중한 결실이다.

식물도 소리를 알아듣는다고 한다. 동물보다 오히려 더 많은 감각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식물은 힘이 세다. 그 신비한 능력은 불가사의다. 식물적 상상력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아득한 태곳적 설화에 가닿는다. 북유럽 신화에는 우주를 떠받치고 있다는 '이그드라실(Yggdrasil)'이라는 이름의 나무가 등장한다. 이 우주수(宇宙樹)는 하늘과 땅, 지옥을 연결하는 거대한 물푸레나무로 알려져 있다. 식물을 매개로 한 인간의 상상력은 무궁무진하다.

식물만큼 풍성한 이야깃거리와 심오한 사고의 뭉치를 제공하는 것도 달리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식물과 함께 하는 삶은 퍽이나 가치 있는 삶이다. 고독과 소외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편안한 대화의 상대, 나아가 사뭇 형이상학적인 인생의 반려까지 되어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식물은 이미 반려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반려식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반려동물에 비해 미미한 게 사실이다. 굳이 반려동물과 비교할 필요는 없다. 다만 반려식물이 공기를 맑게 하고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반려동물과는 또 다른 차원의 내적 평화와 정서적 안정을 가져다준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반려식물 가꾸기는 단순한 원예 그 이상이다.

로즈마리, 드라세나, 틸란드시아, 안시리움, 아이비, 산세베리아, 스킨답서스, 스투키, 스타트필름, 스파이더 플랜트, 디펜바키아, 비얀트, 아레카야자, 후마타, 극락조, 염좌, 박쥐란, 천금냥, 자금우…. 어떤 것은 미세먼지를 잡는 데 좋다고 하고 또 어떤 것은 전자파를 차단하는 데 좋다고 한다. 허브향이 상큼한 식물도 있다. 무엇인들 의미가 없겠는가. 이름이 정 낯설면 예부터 우리가 흔히 보아온 짙푸른 둥근 잎 고무나무 하나 키우며 행복을 비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요체는 반려식물과 얼마나 온전히 호흡하며 교감할 수 있는가, 식물적 상상력을 얼마나 가로세로로 유연하게 펼치며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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