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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의 덫에 빠진 한국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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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의 덫에 빠진 한국 교회
  • 김종면 논설주간
  • 승인 2018.03.10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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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경제 오가닉라이프신문 김종면 논설주간] 인도의 민족해방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는 “나는 그리스도를 좋아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같지 않다는 것이 이유다. 마치 지금, 여기, 우리의 현실 기독교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한 것처럼 들린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하나님을 믿는 건 좋은 데 교회는 싫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 말 속에 담긴 의미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무엇이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신심이 넘치는 이들마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멀리 하게 만드는가.

 

세습이 문제다. 최근 명성교회 ‘부자세습’ 논란 이후 교회 세습이 한층 공공연한 양상을 띠고 있다. 어느 교회는 ‘사위세습’으로 뒷말을 낳고 있다. 교회는 경제공동체인가. 세습이 문제가 되는 것은 늘 가진 게 많은 교회다. 군소교회를 둘러싼 논란은 보기 어렵다. 교회세습의 본질은 결국 탐욕의 신, 맘몬(Mammon)을 섬기는 물신주의에 있다고 볼 수밖에 할 수 없다.

이 세상 모든 것은 하나님이 내게 잠시 맡긴 것이라고 믿는 청지기 정신이야말로 기독교 정신의 요체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 목회자들이 논란의 불씨를 제공하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교회세습은 이미 관행 아닌 관행, 전통 아닌 전통이 됐다. 종교 이야기는 좋게 시작해도 결국 싸움으로 끝나기 일쑤이니 하지 말라고들 한다. 그러나 대형교회 세습은 윤리적으로 파급력이 큰 사회공동체 전체의 문제인 만큼 종교적 입장을 떠나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대형교회 목사직을 자식에게 대물림하는 풍경은 기업 총수가 자식에게 회사를 물려주는 장면과 오버랩 된다. 교인들이 원해서 추대했으니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교회 안팎의 적지 않은 이들이 고개를 내젓는 게 사실이다. 세습을 금지한 총회법이 ‘무용지물’이 됐다. 공의의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 아닌가. 힘(might)이 정의(right)인 세상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세습이라는 부정적 뉘앙스의 말을 사용하지 말고 ‘승계’라는 말을 쓰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인간이 머리만 모래 속에 감추는 타조가 될 수는 없다. 문제의 본질을 가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강조하고 아름다운 말을 나열해도 교회 대물림의 누추한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돈과 권력을 탐하는 것 못지않게 나쁜 것이 영혼의 오만과 정신의 독재다.

목회자들은 겉으로는 짐짓 세습을 경계한다. 그러나 이내 자신이 한 말을 다시 입 속에 집어넣는다. 부끄럽지 않은가. 외식(外飾)을 하다보면 식언(食言)을 하기 마련이다. 그런 이들이 전하는 ‘복된’ 소식에 울림이 있을 수 없다. 절망보다 못한 가짜 희망만 너울댈 뿐이다.

개인기업도 재벌의 반열에 들면 자식에게 마음대로 물려주지 못한다. 자질과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사람들은 재벌이라 불리는 거대기업을 개인의 회사로만 보지 않는다. 대형교회도 마찬가지다. 권세가 있다고 해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법률에는 제척 사유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역차별이 아니다. 정의의 관념에 부합하는 것이다. 세상에 나만을 위해 예비 된 자리라는 게 있을까. 제제다사(濟濟多士)라 했다. 세상은 넓고 인재는 많다.

한국 교회의 위기를 진단한 한 조사에 따르면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주된 이유가 목회자의 비리와 교회세습이라고 한다. 청산유수 같은 설교보다, 땅 끝까지 이르는 복음 전파보다, 하늘을 찌르는 초대형 교회 건립보다 더 중요한 것이 우리 사회에 만연된 종교 냉소주의의 뿌리를 뽑아내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병’을 치유해야 한다. 종교계마저 수저계급론이 통용돼서야 쓰겠는가. 진정 목회자라면 세습을 궁리할 시간에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생각하는 정성을 보여야 할 것이다. 종교가 세속보다 더 세속화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일이다.

많은 목회자들이 메가처치(megachurch)를 꿈꾼다. 메가처치는 또 ‘슈퍼 메가처치’로 나아가려 한다. 그것이 세계 선교에 동참하는 길이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이 자기최면에 가까운 신념은 요지부동이다. 맹목적인 성장주의가 한국 교회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교회 성장은 절대선인가. 외형적인 팽창보다 중요한 것이 질적 성장이다. 한국 교회, 특히 대형교회가 ‘가치의 공동체’로 남기 위해서는 그 대표성과 상징성에 걸맞는 역할을 다해야 한다. 교회가 신음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교회 갱신운동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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