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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의 계방산 '산하를 휩싸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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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의 계방산 '산하를 휩싸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윤대훈
  • 승인 2018.01.13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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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평창군·홍천군 계방산 1577.4m
계방산 정상에서 주목군락지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겨울철이면 온통 눈꽃세상으로 변한다.

[푸드경제 오가닉라이프신문] 강원도 평창과 홍천의 경계에 선 계방산(桂芳山·1577.4m)은 남한 땅에서 다섯 번째의 큰 키를 가졌음에도 늘 주목받지 못했다. 한라, 지리, 설악, 덕유를 뒤미치는 크고 높은 헌걸찬 뫼임에도 세상의 시선은 늘 바로 옆 월정사와 상원사 등 명찰을 품어 큰 위명을 떨치는 오대산으로만 쏠렸다. 그러나 계방산은 오대산 상봉 비로봉(1563.4m)보다 14m쯤 더 높을 뿐 아니라 그 품이나 덩치로도 주변 산들을 압도한다. 동북쪽 오대산 호령봉(1560m)에서 이어지는 산줄기는 계방산을 지나 운두령을 건넌 뒤 회령봉(1309.4m)과 흥정산(1278.2m)을 잇고 내쳐 서쪽으로 치닫는다. 이 산줄기는 남·북한강을 가르며 양평군 두물머리에서 비로소 잦아든다. 한강기맥으로도 불리는 이 산줄기의 양 옆구리로 흐르는 물줄기가 두 강에 흘러드는 것은 물론이다.
 

주능선에서 윗삼거리로 내려서는 갈림길 삼거리에는 커다란 주목 한 그루가 서있어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홍천군 내면 창촌리 인근으로 드넓게 펼쳐진 계방산의 북쪽 산자락은 수많은 산줄기와 골짜기들을 이룬다. ‘을(乙)’자의 형상으로 이리저리 휘어진다는 을수골을 주계곡으로 하여 작은피약골, 소대산골, 큰피약골, 어리목골, 갈골과 수청골의 물줄기는 내린천으로 모여들어 소양강과 북한강이 되어 흐른다.
평창군 용평면 노동리를 감싸는 산줄기는 성채처럼 동서를 가른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 군락지에서부터 비롯되는 노동계곡은 속사천으로 이어져 평창강과 남한강으로 흘러들어 두물머리에서 다시 북한강과 몸을 섞는다.
 

노동계곡을 따라 윗삼거리로 내려오는 길의 마지막 부분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전나무 숲이 이어진다.

홍천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지만 계방산은 주로 평창의 것으로 인식된다. 대부분 운두령에서 산을 오른 후 이어지는 몇 갈래의 산길이 모두 평창군 용평면 노동리로 난 까닭이다. 지금은 영동고속국도가 뚫려 사시장철 행락객들의 차량이 동쪽바다로 몰려갔다가 되돌아가는 길목이지만 과거 이곳은 중중첩첩 후미진 산골의 대명사였다. 겨울 북서풍이 백두대간에 막혀 퍼붓던 엄청난 적설량 또한 이곳의 고립 이미지를 부추겼다. 사방으로 1000m가 넘는 고산준령이 즐비한 오지게 궁벽한 산골에 깃들어 사는 민초들의 삶도 늘 소외와 궁핍의 연속이었다.

평창은 대부분이 해발 500m가 넘는 산간지대로 이루어진 곳이다. 허 생원이 나귀에 드팀전 장거리를 싣고 밤길을 걷다가 고개를 넘고 강물에 빠지던 메밀꽃 핀 오솔길은 이제 남아있지 않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주민들은 고랭지 채소와 약초 재배가 주업이다. 불편한 교통과 비좁은 산비탈의 농토는 소외와 궁핍의 다른 말이었다.
9살 소년 이승복이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다 공비에게 입이 찢겨 죽었다는 사건도 바로 계방산 아래 노동리에서의 일이었다. 1968년 12월의 일이었으니 지금부터 겨우 40여년 전이다. 한때 ‘조작된 작문이다’라는 주장과 ‘사실’이란 주장이 서로 엇갈리기도 했지만 무장공비가 출몰할 만큼 고립되고 외진 산골이란 것에는 아무도 이의가 없었다.

지금 평창은 어떠한가?

1975년 영동고속도로가 강릉까지 개통된 후 평창은 오래된 소외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했다. 동해안으로 가는 사람들이 줄지어 지나고, 겨울이면 용평리조트와 휘닉스파크스 키장으로 스키어들이 몰려든다. 이승복이 살던 초가집은 복원되었고, 그 아래 마을로는 모양도 어여쁜 펜션들이 즐비하다. 산 아래 길가에는 송어횟집이 연달아 자리잡았다. ‘해피 700’이란 평창군의 브랜드 아이덴티티(BI)처럼 높은 해발고도는 질 좋은 고랭지 채소의 산지가 되었고, 발목을 잡던 폭설은 스키장의 입지가 되었다. 배고픔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메밀은 이 지역을 대표하는 먹거리가 되었으며, 꽃이 필 무렵이면 메밀꽃 축제가 성대하게 벌어지기도 한다.
평창은 동계올림픽 유치에 나섰다가 두 번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2010년에는 캐나다 밴쿠버에게, 2014년에는 러시아 소치에 밀려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마침내 2011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2018년 제23회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며 환호성을 울렸다. 지금은 KTX가 연결되어 1시간이면 평창으로 달려갈 수 있으니 얼마나 큰 축복인가?
 

계방산은 남한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산이다. 해발 1090m 운두령에서 오르기 시작하면 두 시간이면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 정상에 서있는 돌탑과 정상석에 바람에 날린 눈발이 달라붙었다.

이제 동계올림픽의 고장이 된 평창에서 계방산은 더욱 겨울이 제격인 산이 되었다. 한겨울이면 하얀 설화로 성장 (盛裝)한 채 사람들을 맞는다. 운두령이 해발 1090m이니 정상까지는 고작 480여 미터의 고도차만 극복하면 된다. 산길도 유순하여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짐짓 2시간이면 남한 땅 5위봉의 정수리에 오를 수 있는 셈이다.
계방산 정상에 서면 자진모리로 짓쳐 달리는 백두대간의 산줄기가 가뭇없이 펼쳐진다. 끝도 없이 펼쳐진 산줄기들의 파도는 동으로 서로 넘실거리고, 남과 북으로 출렁인다. 그 산들을 훑고 지나는 바람소리는 날뛰는 파도처럼 산하를 휩싸고 밀려온다. 아! 그야말로 장엄한 산국!

겨울 계방산에 오르는 이들은 두 눈과 두 귀를 활짝 열어야 한다. 두 눈으로는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산들의 바다를 가늠하고, 두 귀로는 내륙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야 할 일이다. 거기서 오래된 소외와 궁핍의 한탄을 들을 수도, 아니면 서서히 세상으로 걸어나오는 어떤 이의 튼실한 어깨를 목격할는지는 알 수 없다. 오직 그곳을 오르는 이의 눈과 귀가 담당할 몫일 뿐이다. 

INFORMATION
 

해발 1577m의 계방산 정상.
날씨가 맑다면 황병산 오대산 방태산과 같은 1000m 전후의 고봉들과 백두대간의 산줄기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산길

계방산은 홍천군과 평창군의 경계에 있는 산이지 만 등산로가 전부 평창군 쪽으로 나 있다. 정상으로 가는 대표적인 코스는 네 가지 정도로, 운두령에서 시작하여 1492봉을 지나 계방산으로 오르는 코스가 가장 짧으며 1시간 30분 정도면 정상까지 충분하다. 아랫삼거리에서 윗삼거리를 지나 노동계곡으로 오르는 코스나 아랫삼거리에서 바로 계방산 남쪽 능선을 타고 오르는 코스는 3시간 정도 걸리며, 척천리 방아다리마을에서 1462봉을 지나 정상으로 향하는 코스는 자연휴식년제 구간으로 출입을 통제한다.
계방산 정상에 오르면 북쪽으로는 설악산과 점봉산이, 서쪽으로는 회기산과 태기산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오대산의 노인봉과 대관령이 보이며 이들 산 능선들이 이루는 마루금이 파도처럼 넘실대며 장관을 연출한다.
척천리 방아다리마을 코스에는 방아다리약수터가, 아랫삼거리 코스에도 약수터가 있어 산행 전 물을 뜰 수 있으나 운두령코스는 물이 없어 미리 물을 준비해 가야 한다.

교통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영동고속도로 속사 나들목으로 나온 후 좌회전을 두 번 해서 인제로 연결되는 31번 국도를 따라 가다보면 운두령이 나오며 고갯마루에 주차장도 널찍하게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우선 평창군 진부로 가면 된다.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강릉행 직행버스나 주문진행 직행버스를 타고 진부에서 내린다. KTX를 이용해 진부에서 내려도 마찬가지다. 진부터미널에서 하루 세 번(9:30, 13:10, 17:00) 운행하는 내면행 버스를 타서 운두령에서 내리면 된다.
 

먹을거리

운두령송어횟집
제법 고풍스러운 기와집인 운두령송어횟집은 송어회를 차가운 돌에 올린 채로 상으로 나온다. 차가운 돌로 회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비법으로 유명한데 신선도를 유지할 시간도 필요 없이 접시를 비울정도로 감칠맛 난다. 개인 그릇에 야채와 콩가루, 고추장, 다진 마늘, 참기름을 넣고 쓱쓱 비벼 송어회와 함께 먹는다. 회를 다 먹고 밥을 시키면 세 가지 담 백한 나물과 얼큰한 매운탕이 함께 나온다.

사진 양계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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