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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국가책임제 원년의 각오 새롭게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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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국가책임제 원년의 각오 새롭게 해야
  • 김종면 논설위원
  • 승인 2018.01.09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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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경제 오가닉라이프신문 김종면 논설위원] “내 귀여운 생쥐, 우리 예쁜이…. 예전엔 당신과 단둘만 남는 게 두려웠는데 이젠 당신 없인 못살아. 그만 집에 가자구. 내일은 또 새 날이 밝겠지. 그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날이 갈수록 우린 점점 더 가까워질 거야”

 

영화 ‘아이리스’에서 치매 때문에 소동을 일으키는 아내 아이리스 머독을 남편 존 베일리는 이렇게 진정시킨다. 그러나 이미 ‘아이’가 되어버린 아내는 최소한의 사리 분별도 하지 못한다. 실화를 토대로 한 이 작품은 20세기 영국 최고의 지성 커플로 꼽히는 아이리스 머독과 존 베일리 부부의 삶과 사랑, 그리고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전기 영화다.

머독은 비트겐슈타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옥스퍼드에서 철학을 가르친 철학자로 1954년 ‘그물을 헤치고’를 발표하며 소설가로 등단했다. 예순 살에 발표한 ‘바다여, 바다여’로 부커상을 받았고, 일흔 다섯 살에 ‘잭슨의 딜레마’라는 소설을 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듬해 뒤늦게 치매 진단을 받는다. 철학과 문학을 가로지르며 종횡무진 지성을 과시한 그는 마침내 ‘뇌가 텅 빈 상태’가 된다. 소변도 가리지 못하고, 집을 나가 떠돌기도 한다. “언어는 곧 사고”라고 주장해온 이 당대의 지성은 ‘개(dog)’라는 글자를 ‘신(god)’으로 읽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처한다.

머독의 경우 치매 증상을 좀 더 일찍 발견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일흔 다섯의 나이에 소설을 낼 정도로 두뇌활동을 왕성하게 했으니 주위에서 치매를 의심하지 못했을 법도 하다. 그러나 머독이 사망한 후 영국 런던대 인지신경과학연구소는 머독의 치매 발병애 대한 의미 있는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팀은 ‘바다여, 바다여’등 머독의 이전 대표작들과 마지막 소설 ‘잭슨의 딜레마’를 대조해 본 결과 후자는 도저히 머독의 작품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어휘력이 빈곤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미 진행된 치매의 징후를 방치한 것이다.

치매에 얽힌 이야기는 소설보다 더 극적이다. 치매는 이제 우리 주위에서 어느 병보다 흔하게 접하는 ‘국민 질병’이 됐다. 한국은 급속한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증가하면서 치매 환자 또한 크게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치매인구는 2017년 70만 명에서 2024년에는 100만 명, 2030년에는 127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가 치매 환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환자 가족의 고통과 부양 부담을 덜어주지 않으면 개인뿐 아니라 사회공동체, 나아가 국가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는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치매국가책임제는 어느 국정 사안보다도 중요한 국가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 등을 골자로 하는 건강보험 보장성강화 대책 이른바 ‘문재인 케어’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함께 치매국가책임제라는 획기적인 보건복지 정책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치매는 누구에게나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올 수 있는 ‘불가항력’의 질병이다. 환자 가족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을 끼친다. 그런 만큼 치매국가책임제에 대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소상히 알 필요가 있다. 국가는 치매환자와 가족을 어떻게 책임진다는 것인가.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치매 어르신 지원을 위한 ‘인지지원등급’이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1월부터 장기요양 인지지원등급을 신설, 경증치매 환자에 대해 신체적인 기능과 관계없이 장기요양보험 대상자가 될 수 있도록 선정기준을 개선했다. 그동안은 신체기능을 중심으로 1~5등급까지 장기요양등급을 판정했기 때문에 치매가 있어도 신체기능이 양호한 경증치매 환자의 경우 등급판정에서 탈락하곤 했다. 그러나 올해 1월부터는 치매가 확인된 환자는 신체기능과 무관하게 인지지원등급을 부여하고, 치매증상 악화 지연을 위한 주·야간보호 인지기능 개선 프로그램 등 인지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내년부터는 60세 이상 치매 의심환자(경도인지장애)에 대한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검사에도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경도인지장애(Mild Cognitive Impairment, MCI)’는 동일한 연령대에 비해 인지기능 특히 기억력이 떨어지지만 일상생활을 수행하는 능력은 유지되는 상태다. 앞으로 치매로의 이행이 의심되는 정상노화와 치매의 중간 상태를 가리킨다. 그동안 치매에 대한 MRI검사는 경증이나 중등도 치매로 진단되는 경우만 건강보험이 적용됐다. 치매 의심단계에서 MRI 검사를 실시하면 모두 비급여로 비용을 전액 본인이 부담할 수밖에 없었다.

보건복지부는 치매 예방과 치매친화적 환경 조성을 위해 전국 350여개 노인복지관에서도 치매 예방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75세 이상 독거노인 등 치매위험에 노출된 고령자들을 대상으로 음악·미술·원예 등을 활용한 인지활동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66세 대상의 전국민 국가건강검진 시 인지기능검사의 경우 기존 5개 항목의 1차 간이검사를, 15개 항목의 인지기능장애검사로 확대한다. 검사 주기(66세부터)도 4년에서 2년으로 단축하며, 검사 결과 치매가 의심되면 치매안심센터로 연결해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치매가족 휴가제, 치매어르신 실종 예방사업, 치매노인 공공후견제도 등도 도입한다.

치매환자에 특화된 치매안심형 시설도 확충한다. 치매안심형 시설은 일반 시설보다 요양보호사를 추가로 더 배치하고, 신체나 인지 기능 유지와 관련된 치매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활동성이 강한 경증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한 치매안심형 주야간보호시설과 중증 치매 환자 대상 치매안심형 입소시설도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늘려나갈 계획이다.

치매국가책임제는 선한 정책이다. 문제는 인프라다. 의료와 복지가 결합한 지역 기반의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치매 전문가 양성도 시급하다.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치매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치매안심센터를 개소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고무적이다. 치매국가책임제가 지속가능한 제도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자체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자체별 ‘맞춤형’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라는 정부의 국정목표는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재정 압박 요인에 대한 정부의 보다 정교한 관리가 요구된다.

정부가 치매국가책임제의 일환으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예방법과 배회방지 등 돌봄기술 개발을 적극 지원하기로 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치매가 돌봄노동을 감당하는 주변 사람들의 헌신 없이는 극복하기 어려운 난감한 질병임을 감안하면 이는 무엇보다 절실한 대목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이야말로 온 마을, 아니 온 나라가 매달려야 할 국가적 과제다. 너나없이 치매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때다.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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