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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롱패딩’ 열풍과 가심비(價心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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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롱패딩’ 열풍과 가심비(價心比)
  • 김종면 논설위원
  • 승인 2017.12.26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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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경제 오가닉라이프신문 김종면 논설위원] 우리 주위의 환경은 끊임없이 변한다. 그런 변화의 방향성을 알려주는 게 트렌드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최근 소비자 3천명과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18년 외식 트렌드를 이끌어갈 키워드의 하나로 ‘가심비(價心比)’가 꼽혔다. 이는 외식 분야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이제 가성비를 넘어 가심비인가.

가성비가 상품의 가격 대비 성능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가심비는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을 따진 것이다. 가성비가 객관적인 데 비해 가심비는 주관적인 성격이 강하다. 소비자가 상품 구매를 통해 느끼는 심리적인 만족감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선택 기준이 가성비에서 가심비로 옮겨가는 변화의 징후는 곳곳에서 엿보인다. 내년 외식시장에서는 음식의 비주얼이나 플레이팅 기법, 매장 인테리어 등으로 차별화된 식당과 상품이 인기를 끌 것이란 전망이다. 많은 이들이 소비행위를 통해 스트레스나 우울을 해소하려고 한다. 소비자의 향수를 자극하는 골목상권이 호응을 얻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심비를 따지는 소비는 인간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한 자연스러운 소비 진화의 한 양상이다. 

가심비에 따른 소비를 온전히 실천하는 데는 만만찮은 사고가 필요하다. 가심비 소비가 사회적으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이어야 할까.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이 윤리적 소비다, 그것은 소비자가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생산, 유통 등의 전 과정이 소비와 연결돼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윤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 곧 나 자신을 넘어 사회를 생각하는 소비다.
 

사진 출처=평창올림픽 공식 온라인스토어

최근 화제가 된 ‘평창 롱패딩’ 열풍 현상은 가심비의 관점에서도 접근해 볼 만하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념해 출시된 평창 롱패딩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주요 인터넷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는가 하면 중고거래 사이트에서는 웃돈이 붙어 거래되기도 했다. 백화점 앞에는 수백 명이 번호표를 받고 밤샘 대기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 같은 신드롬의 근원은 물론 괜찮은 상품을 비교적 싼 값에 살 수 있다는 가성비의 매력에 있다.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굳이 ‘동물의 털은 오직 동물의 것’임을 외치는 동물보호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패딩 안에 들어 있는 거위나 오리털에 관한 불편한 진실을 잘 알고 있다. 예컨대 동물학대 논란 같은 것 말이다. 패딩 제품과 관련해 흔히 얘기하는 것이 RDS(Responsible Down Standard), 즉 ’책임 있는 다운 기준‘ 인증 문제다. RDS 인증 마크는 살아 있는 조류의 깃털을 강제로 채취하지 않으며, 깃털 생산과 관련된 모든 유통 과정을 알 수 있고, 거위나 오리의 먹이· 건강· 위생· 생활환경 등을 고려해 윤리적이고 정당한 방식으로 털을 생산하는 업체만 받을 수 있다. 평창 롱패딩이 한창 인기를 끌 때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어떤 생산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RDS 인증 여부를 알아보자는 댓글도 올랐다.

평창 롱패딩은 구스 다운(Goose Down)이라 불리는 거위털을 충전재로 사용했다. 이 옷은 저렴한 가격과 함께 RDS 인증을 받은 제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모았다. 평창 롱패딩 라벨에는 ‘RDS 기준에 적합한 양질의 원료만을 엄선해서 사용하며 동물보호를 위해 라이브 플러킹을 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RDS 기준이라는 것이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는 생각해볼 문제지만, 동물착취를 경계하는 세계적 흐름을 따른 제품을 평창 동계올림픽 공식 상품으로 삼은 것은 다행한 일이다.

‘라이브 플러킹(Live Plucking)’은 살아 있는 조류의 털을 강제로 뽑는 것을 말한다. 오리나 거위의 털을 얻기 위해 진행되는 잔인한 과정이 알려지면서 노스페이스 등 아웃도어 업체들은 2014년 자발적으로 RDS 인증을 만들었다. 친환경 소재로 유명한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생산 과정을 윤리적으로 자체 관리하는 ‘트레이서블 다운(Traceable Down·생산과정 추적 다운)’ 시스템을 도입, 2014년부터 100% 트레이서블 다운을 사용하고 있다.

평창 롱패딩은 무엇보다 ‘착한 가격’으로 인기를 끌었다. RDS 인증을 받은 공장에서 생산됐다니 ‘착한 상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평창 롱패딩에 그토록 열광한 사람들이 동물복지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착한 소비’ 이슈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해 봤는지는 의문이다. 분명한 것은 가심비의 본질은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이 함께 하는 지속 가능한 삶에 있다는 사실이다.

가심비 담론은 보다 활성화돼야 한다. 요체는 소비자가 건강한 소비 윤리를 내면화함으로써 스스로 가치지향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패딩을 입더라도 이왕이면 RDS 인증 제품을 입는다든가 커피를 마셔도 공정무역 커피를 마신다든가 하는 식의 선한 소비를 실천하는 길은 널려 있다. 시중에는 친환경 소재인 옥수수 섬유로 만든 양말도 나와 있다.

패션업계는  ‘착한 패션’의 경향이 뚜렷하다. 구찌의 최고경영자 마르코 비자리는 최근 ‘퍼 프리(Fur Free)’를 선언했다. 앞으로 모피 제품을 생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안은 환경과 인류 등에 초점을 맞춘 ‘지속 가능 패션’이다. 지난해에는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기술이 발달한 만큼 이제 모피를 얻기 위해 동물들에게 잔혹한 방법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며 모피 생산 중단을 밝혔다. 동물모피는 더 이상 고급 패션의 대명사가 아니다. 싸구려 취급을 받던 ‘페이크 퍼(Fake Fur, 인조모피)’가 ‘에코 퍼(Eco Fur, 생태모피)’로 오히려 더 대접받는 세상이다.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들이 ‘탈(脫) 모피’로 방향을 트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채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모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많이 달라졌다.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한 살충제 달걀 사태와 ‘햄버거병’ 파동 같은 ‘환경재앙’을 겪으며 동물복지 문제에 대해서도 한층 관심을 갖게 됐다. 우리에게는 밍크코트가 부와 지위의 상징으로 뭇 여성의 로망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보기에도 부담스러운, 사뭇 부정적인 이미지로 비친다. 동물착취 없는 윤리적 패션에 대한 인식은 아직 미미한 형편이지만 우리는 분명 바뀌었다. ‘물리적’ 가성비를 넘어 ‘정신적’ 가심비를 지향하는 의식 있는 소비행동의 주체가 됐다.

바야흐로 가심비의 시대다. 평창 롱패딩 열풍은 우리에게 결코 가볍지 않은 사유의 뭉치를 안겨준다. 소비하는 인간 호모 컨슈머리쿠스.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는 소비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더욱 더 올바른 소비를 해야 한다. 패딩을 입기 전에 그것이 환경을 고려해 만든 윤리적인 제품인지 아니면 동물착취를 통해 얻은 비인도적인 제품인지 한번쯤 검토하며 우리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생각해보는 것은 어떤가.

가심비의 잣대를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윤리적 소비라는 공공선은 늘 염두에 둬야 한다. 수요가 공급을 낳는다. 소비자가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상품을 멀리 하면 그것은 이내 사라지고 만다. 깨어 있는 소비자만이 가심비의 진정한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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