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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의 미덕’ 아쉬운 반려견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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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의 미덕’ 아쉬운 반려견 문화
  • 김종면 논설위원
  • 승인 2017.10.29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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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경제 오가닉라이프신문 김종면 논설위원]  어디를 가든지 꼭 거쳐야 하는 마을이라고 해서 ‘목넘이 마을’이다. 어느 날 이곳에 뒷다리 하나를 저는 신둥이(흰둥이) 한 마리가 나타난다. 신둥이는 마을 개들의 먹이그릇을 뒤지며 목숨을 부지한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미친 개 취급을 하고, 신둥이는 이내 뒷산으로 쫓겨난다. 사람들은 신둥이와 함께 마을의 개들이 사라졌다가 돌아오자 그것들도 미쳐버릴지 모른다며 잡아먹는다. 신둥이는 다시 마을로 돌아온다. 모두들 신둥이를 잡으려고 부산하다. 하지만 간난이 할아버지는 신둥이가 새끼를 밴 것을 보고 차마 죽이지 못하고 빠져나가게 내버려 둔다. 산에 나무를 하러 간 할아버지는 신둥이 새끼들을 발견하고 몰래 보살펴준다. 그리고 새끼들이 자라자 차례로 데려와 이웃에 나눠준다. 마을의 개들은 신둥이의 피를 이어받는다.

1948년 ‘개벽’에 발표된 황순원의 단편 ‘목넘이 마을의 개’의 줄거리다. 70년 전 소설이지만 우리에게 많은 생각의 뭉치를 던져준다. 요즘 ‘개’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기에 더욱 그렇다.

작가는 이 우화적 소설은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만주 이주의 길목인 목넘이 마을을 배경으로 삼은 데서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식민지 시대 일제의 수탈로 적잖은 농민들이 유이민 신세가 돼 만주나 북간도 등지로 새 삶을 찾아 떠났다. 당대의 상황을 고려하면 작중 신둥이의 끈질긴 생명력은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린 우리 민족의 강인한 삶의 의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친 물건 취급을 받으며 마을에서 쫓겨나고, 한편에서는 인간에게 잡아먹히는 존재이지만 이 소설에서 그리는 개는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비록 소설 속 개의 모습이지만, 그것은 1940년대 ‘동물로서의 개’를 바라보는 일반의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신둥이라는 개의 강인한 생명력은 식민지 시대 민초의 그것과 등가물로 읽힌다. 그러나 간난이 할아버지를 제외한 마을 사람들의 행태에서 보듯 당대의 보통 사람들은 개를 필경 ‘그냥 개’로 다루었고 또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을 법하다.

이제 세상은 바뀌었다. 개를 그냥 개 취급했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사람보다 개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도그 퍼스트(Dog First)’ 시대가 됐다. 반려견 인구 천만 명, 그만큼 강아지 혹은 개와 ‘더불어 행복’한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그러나 강아지 특히 성견(成犬)을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반려견 사고 건수는 최근 6년 새 4배 넘게 늘었다. ‘도그 포비아’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번에는 유명 한식당 대표가 반려견에 물려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논란이 증폭되자 정부는 부랴부랴 반려견 안전관리 강화 대책을 내놓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3일 “공공장소에서 반려견에 목줄, 입마개를 채우지 않는 행위에 대한 지도와 단속 수준, 과태료 부과 기준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되는 내년 3월부터 반려견과 공공장소에 동행할 때 목줄, 맹견의 경우에는 입마개를 채우지 않으면 과태료를 최대 50만원까지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는 목줄과 입마개 등 안전 조치를 하지 않으면 최대 10만원의 과태료를 무는 게 고작이다. 외출할 때 반려견 목줄을 하지 않거나 맹견에 입마개를 하지 않은 주인을 신고하면 과태료의 최대 20%를 포상금으로 받을 수 있는 신고포상금제 이른바 ‘펫파라치(견파라치)’ 제도도 추진하고 있다.

입마개를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하는 맹견의 범위도 확대된다. 현행 동물보호법 시행규칙은 목줄과 입마개를 해야 하는 맹견의 종류를 도사견·아메리칸 핏불 테리어·아메리칸 스태퍼드셔 테리어·스태퍼드셔 불 테리어·로트와일러 등 5종과 그 외 잡종, 그밖에 사람을 공격해 상해를 입힐 가능성이 높은 개로 규정하고 있다. 그동안 문제가 있었지만 현행 맹견 기준에서는 빠져 있는 종을 외국의 예를 참고해 추가한다는 방침이다.

동물보호법과 시행규칙에 따르면 반려동물과 외출할 때에는 다른 사람에게 위해나 혐오감을 주지 않는 범위의 길이로 목줄을 해야 하며, 맹견을 동반하고 외출을 할 때에는 목줄 외에 입마개를 채우도록 돼 있다. 이런 기본 중의 기본만 잘 지켜도 반려견으로 인한 인명 사고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정부가 반려견 안전관리를 강화하기로 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다.

미국은 반려동물 가구가 전체의 40퍼센트에 달하는 ‘반려동물 대국’이다. 해마다 개에 물리는 사고가 450만 건 이상 발생한다. ‘개물림 사고’가 사회적 문제가 되자 1980년대에서 90년대 사이 대부분의 주에서 ‘개물림 법(Dog Bite Law)’을 제정했다. 미국에서는 반려견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면 개 주인은 1000달러(한화 약 110만원) 상당의 벌금형이나 6개월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영국은 1991년 ‘위험한 개 법(Dangerous Dogs Act)’을 제정, 인명 사고를 낸 개 주인에게 최고 14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게 했다. 중국에서는 누적 벌점 시스템을 도입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개를 기르지 못하게 하는 지역도 등장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개 주인에게 관리 소홀에 따른 형법상 과실치사상죄를 적용할 수 있지만 처벌 수위가 한참 낮다. 과실치상죄는 500만원 이하 벌금과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해진다. 과실치사죄의 경우도 2년 이하의 금고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그친다.

동물관리시스템을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나라 중 하나가 캐나다다. 캐나다 앨버타 주 캘거리에서는 2006년 반려동물 관리에 대한 규정을 담은 ‘책임 있는 반려동물 인식 조례(Responsible Pet Ownership Bylaw)’를 제정했다. 조례에 따르면 개가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다른 개를 죽였을 경우, 개 주인은 재판을 받아야 한다. 법원은 전문가의 평가를 통해 개를 ‘사나운 개(Vicious dog)’로 등록할 것인지 안락사를 시킬 것인지 결정한다. ‘사나운 개’로 등록이 되면 내장형 칩 이식과 중성화 수술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며 매년 269달러의 등록세를 내야 한다. 집에는 ‘개조심’이라는 표지판을 붙여야 한다. 이처럼 외국에서는 반려견에 대한 관리 규정을 강화하는 추세로 사상(死傷) 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있다.

반려동물의 입양, 분양도 만만찮은 문제다. 2002년 동물보호를 국가의 의무로 명시한 독일의 반려견 입양정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반려동물의 천국’ 독일은 반려동물의 매매(입양, 분양)가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반려동물을 판매하는 펫숍 등이 없기 때문에 보통 ‘티어하임’과 같은 유기동물보호소에서 입양을 한다. 보호소는 입양후보자가 입양할 동물을 제대로 다루는지 충분히 관찰한 후에 입양여부를 결정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펫숍이나 가정분양 등을 통해 손쉽게 개를 분양할 수도 분양받을 수도 있다. 마트에만 가도 통유리에 어린 강아지나 고양이가 ‘진열’돼 있는 광경을 어렵잖게 목격할 수 있다. 그러나보니 반려인의 기본인 ‘펫티켓’은커녕 개 주인으로서 최소한의 책임의식도 기대하기 어렵다. 버려지는 개가 매년 10만 마리에 이르는 ‘유기견 대국’의 부끄러운 현주소다.

과태료 처분 규정만 있는 현행 동물보호법 안에 징역, 벌금 부과 등 처벌 조항을 추가로 담는 것은 당연한 처사다. 외국의 사례만 봐도 우리의 반려견 안전관리를 위한 제도적 노력은 빈약하기 짝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보다 강화된 형태로 시행되면 효과야 있겠지만 여전히 단속에 의존하는 ‘단발성’ 규제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사람을 물면 무조건 안락사를 시켜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도 제기한다. ‘반려동물 특별법’을 만들어 보다 체계적인 안전관리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제 목줄이나 입마개를 하지 않은 개는 ‘공공의 적’이 된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집 개는 물지 않는다’거나 ‘나쁜 개는 없다’는 말을 예사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래된 미신처럼 유령처럼 우리 곁을 맴돈다. 뜨거운 물을 넣어 그 열기로 몸을 따뜻하게 하는 탕파(湯婆)를 이불 속에 넣고 자듯 반려견을 꼭 부둥켜안고 온기를 나누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에게 반려견은 하잘것없는 인간 이상일 터이니 ‘나쁜 개’란 있을 리 없다. 그러나 개가 사람을 물어 죽이는 일이 세계 도처에서, 아니 바로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신의 반려견이 이웃을 무는 사고를 쳤는데 회초리를 들지는 못할망정 어떻게 생일파티를 열어주며 수많은 이들이 보는 인스타그램에 사진까지 올릴 수 있단 말인가. 반려견에 쏟는 그 정성과 관심을 인간에게 먼저 보이라는 아픈 지적을 고깝게만 들을 일은 아니다.

익애(溺愛)를 경계한다. 사랑도 너무 흠뻑 빠져 헤어나지 못하면 때로 위험을 초래한다.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익애 속에 자란 손주 아이가 버릇이 나쁘게 든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본다. 오냐오냐 귀여운 녀석하며 무람없이 키우는 것만이 반려견을 사랑하는 길이 아니다. 목줄을 채울 땐 채우고 입마개를 해야 할 땐 하며 규율 바르게 키우는 게 진정한 애견인의 자세다.

아무리 반려견 안전관리를 강화한다 해도 반려인 자신이 올바른 반려견 관(觀)을 갖지 못하면 만사휴의다. 펫티켓부터 내면화해야 한다. 인간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한에서만 반려견은 존재 이유가 있다. 나의 행복이 남의 불행이 되어서야 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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