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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의 계절, 응전 태세를 갖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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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의 계절, 응전 태세를 갖춰라
  • 김종면 논설위원
  • 승인 2017.09.15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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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경제 오가닉라이프신문 김종면 논설위원] 인류의 역사는 질병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의 문명이 흥망성쇠를 거듭해온 것처럼 질병도 시대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며 인류를 질곡에 빠뜨렸다. 동로마 제국의 멸망에는 말라리아가 일조했다. 흑사병으로 잘 알려진 페스트는 중세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잉카제국 멸망의 주요 원인으로 역사가들은 스페인이 퍼뜨린 천연두 바이러스를 꼽는다. 천연두는 남북 아메리카 원주민을 덮쳐 백인들의 정복사업에 길을 터주었다. 그런가 하면 1918년 전 세계를 강타한 스페인 독감은 2천만 명 이상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 스페인 독감은 유럽과 미국에서만 맹위를 떨친 게 아니다. 백범 김구 선생도 당시 중국 상해에 있을 때 스페인 독감에 걸려 20일 동안 고생했다는 내용이 ‘백범일지’에 나온다.

 

질병의 경중을 따지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스페인 독감의 경우는 우리에게 좀 다르게 다가온다. 인류 최초의 전염병으로 알려진 천연두는 ‘전염병의 제왕’으로 불리며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기승을 부렸지만 예방접종 실시로 박멸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80년 천연두가 근절됐다고 발표했다. ‘잊혀진 질병’인 셈이다. 하지만 스페인 독감은 여전히 우리의 관심권에 머문다. 2009년 발생한 신종플루와 1918년 스페인 독감의 사망 원인은 같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페인 독감의 경우 감기에 걸린 듯한 증상을 보이다가 폐렴으로 발전한다. 신종플루 역시 폐와 뇌 깊숙이 침투해 폐렴과 같은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한다.

독감은 목과 코, 폐에 침투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돼 고열, 두통, 근육통, 관절통 등의 전신 증상을 겪게 되는 급성 호흡기질환이다. 흔히 '독한 감기' 쯤으로 여기기 쉽지만 일반적인 감기와는 전혀 다른 무서운 질병이다. 독감은 급성 고열과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는 만큼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지난겨울에는 때늦은 유행주의보 발령 등 보건당국의 방심 탓에 독감 환자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독감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입증된 백신이 공급됐음에도 불구하고 백신 접종 후 독감에 걸렸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이런 현실에서 질병관리본부가 독감 관리체계를 대폭 뜯어고치기로 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 질병관리본부는 독감 백신 효능이 연령대별, 성별, 앓고 있는 질환, 접종 시기, 접종 백신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 각각의 백신 효과를 파악하기 위해 자료 수집과 분석에 나섰다. 독감 표본감시에 참여하는 의료기관을 개편해 대표성을 강화하는 한편 독감 백신 효능 분석, 학교 독감예보제 도입, 국내 독감 사망자 수 추계 등 개선방안도 마련했다.

질병관리본부는 독감 무료 예방접종을 생후 6∼59개월 아동과 만 65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이달부터 실시키로 했다. 75세 이상 어르신의 경우 이달 26일부터, 65세 이상 어르신은 다음달 12일부터 접종을 실시한다. 접종 초기의 혼잡을 방지하고 어르신의 안전과 접종자 편의를 위한 배려다. 2017∼2018년 독감 무료접종 대상을 크게 확대했을 뿐만 아니라 접종 장소도 늘려 전국 보건소와 병·의원 등 1만9천여 곳에서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제 본격적인 ‘접종 시즌’이 시작됐다. 독감백신은 언제 접종해야 좋을까. 의료계에 따르면 독감백신을 접종한 뒤 독감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생기기까지는 약 2주가 걸린다. 이렇게 생긴 항체는 약 6개월 정도 몸 안에 유지돼 면역 효과를 나타낸다. 그런 만큼 독감백신을 접종할 때는 면역 효과의 지속 기간과 독감 유행 시기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국내의 경우 독감은 대개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유행하기 때문에 너무 일찍 접종하면 봄철 독감에 노출될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독감 백신은 9월 초보다는 10월에 접종하는 게 좋다. 접종 후 2주 후 형성된 항체가 6개월이 지나면 효과가 감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감 바이러스는 매년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해마다 접종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독감 바이러스는 A, B, C형이 있다. 일반적으로 유행하는 것은 A형과 B형이다. 흔히 A형 2종(H1N1, H3N2), B형 2종(야마가타, 빅토리아)으로 분류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겨울에는 주로 A형이 유행하고, 봄에는 B형이 유행한다. 국내에 허가된 독감백신은 A형 2종, B형 가운데 1종만 예방하는 ‘3가 백신’이 대부분이었지만 2015년부터 A형 2종, B형 2종 모두 예방 가능한 ‘4가 백신’이 등장하면서 좀 더 확실한 예방의 길이 열렸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럽의약품청(EMA)은 4가 백신 접종을 권고한다. 미국이나 유럽, 호주 등 선진국에서도 3가 백신보다 4가 백신을 더 많이 사용한다. 매년 어떤 독감 바이러스가 유행할지 확신할 수 없는 만큼 보다 많은 유형에 대해 예방하는 4가 백신이 더 유용할 수밖에 없다.

국내 독감백신 시장은 연간 6천억원 규모로 ‘3가’와 ‘4가’가 각각 절반 정도씩 차지한다. 정부가 4가 독감 백신을 영유아·임신부·노년층 등을 대상으로 무료로 접종해주는 국가필수예방접종(NIP; National Immunization Program)에 포함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보급이 늦어졌다. 그러나 정부가 4가 백신을 국가필수예방접종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차세대 독감 백신으로 불리는 4가 백신이 사실상 시장의 ‘대세’가 될 것인 만큼 이를 놓고 국내 제약사와 다국적 제약사 간의 치열한 대결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점령해온 백신 시장에 국내 제약사들이 비슷한 효능 대비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공략에 나선 모양새다. 공정거래 질서를 해친다는 지적도 없지 않지만 궁극적인 독감 예방 차원에서 볼 때 그 자체를 문제 삼을 것은 아니다.

국가필수예방접종사업이 본격화됨에 따라 우리 국민의 전체적인 인플루엔자 유병률 하락과 질병 부담 감소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무료접종 대상이 아니더라도 독감 고위험군인 만성질환자나 50~64세 미만의 중장년, 임신부 등은 백신을 접종하는 게 바람직하다. 유아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는 부모와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 근무자, 고령의 어르신들이 모여 있는 요양시설 근무자 등도 접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독감은 부지불식간에 우리 곁을 찾아와 고통을 안겨주는 고약한 불청객이다. 요즘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완연하다. 바야흐로 독감의 계절이다. 응전 태세를 갖춰야 한다.

사진  매거진플러스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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