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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간 맥주, 시스크(CISK) 라거 비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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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간 맥주, 시스크(CISK) 라거 비어 ★★★☆
  • 백종국 기자
  • 승인 2017.09.10 2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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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경제 오가닉라이프신문 백종국 기자] 노란 색상이 눈에 띄어 백화점에서 집어온 시스크(CISK) 라거 비어는 지중해의 소국가 몰타의 맥주이다. 시칠리아 섬 아래 인구 40만의 이 나라에서 맥주를 직접 생산한 것이 의아해 맛이 어떨지 궁금했다.

시스크 라거 비어는 1928년 세워진 유서 깊은 파슨스 양조장에서 1929년의 오리지널 레시피에 따라 만든, 몰타의 ‘국민맥주’와도 같은 술이라 한다. 잔에 따르니 황금빛 액체에 하얀 거품이 예쁘고, 부드럽게 잘 넘어간다.

피니시에 홉의 톡 쏘는 맛이 기분 나쁘지 않은 쌉싸름함을 남긴다. 물 같지만은 않고 보디감이 느껴지지만 청량감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몰타처럼 더운 나라에서 시원하게 마시는 맥주로는 그만일 듯하다. 알코올 함량은 4.2%.

특이한 것은 원료로 옥수수 전분이 들어있는 것이다. 오리지널 레시피에 따랐다고 하면 1929년 당시에도 옥수수를 사용했다는 것으로,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몰타에서 옥수수를 재배했는지, 다른 나라로부터 수입했는지 등 옥수수를 어떻게 조달했는지가 우선 궁금하다.

옥수수는 미국 부가물 맥주(American Adjunct Lager)의 특징 아닌가. 미국 양조장들은 20세기 전후부터 맛을 순하게 하고 재료비를 아끼기 위해 100% 맥아를 쓰기보다는 쌀이나 옥수수를 첨가해 맥주를 만들었고, 지금도 그렇게 만드는 곳이 적지 않다. 그런 점으로 인해 부가물 맥주는 맥주순수령을 따르는 맥주 마니아들의 공격 대상이며 결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하지만 1929년 몰타가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몰타는 1814년부터 1964년까지 영국의 식민지였고, 미국은 1920년부터 1933년까지 금주령의 시대였다. 하지만 몰타가 영국의 지배 아래 있었어도 맥주까지 영국의 입맛을 따르지는 않았다. 시스크 라거가 하면발효 맥주라는 것은 상면발효 맥주인 영국식이 아니라 하면발효 맥주인 독일식을 따랐다는 얘기다.

1929년 당시 유럽은 필스너의 시대를 지나 페일 라거(Pale Lager)의 시대였다. 페일 라거는 필스너의 강한 홉 향과 쓴맛을 누그러트린 맥주로 우리나라 맥주의 대부분도 이에 속한다. 1894년 바이에른 뮌헨에서 태어난 페일 라거인 헬레스(Helles)는 필스너보다 맥아 향을 더하고 쓴맛을 줄인 맥주로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시스크 라거는 색깔부터 당시 헬레스의 선례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시스크에서 느껴지는 과일향 허브향 등은 뮌헨식 하면발효효모의 전형적인 특징이며 느껴지는 단맛과 엷은 홉 향도 헬레스와 궤를 같이 한다.

하지만 헬레스는 옥수수를 원료로 사용하진 않았다. 바이에른주와 뮌휀이 맥주순수령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 밀을 맥주 원료로 사용했어도 옥수수를 사용한 경우는 보지 못했다. 시스크 라거는 당시 어려운 물자 사정 아래서 밀보다 값이 싼 옥수수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그 옥수수는 단맛과 부드러움을 추가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한편 페일 라거 이후 1960~70년대 라이트 라거(Light Lager)인 미국식 부가물 맥주가 본격 등장해 새로운 흐름을 이끈다. 옥수수 쌀 등을 첨가해 페일 라거보다 가벼운 풍미를 내는 미국식 라이트 라거는 현재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식 라이트 라거 이전에 몰타식 시스코 라거가 있었다. 홉의 잔향이 특별하긴 하지만 시스코 라거가 라이트 라거의 ‘원조’라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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