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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충제 계란’ 예고된 재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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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충제 계란’ 예고된 재앙인가
  • 김종면
  • 승인 2017.09.01 0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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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경제 오가닉라이프신문 김종면 논설위원 ] 1961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바닷새들이 날뛰며 사람을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신경세포를 파괴해 기억을 잃게 만드는 독성물질 도모이산에 중독된 것으로 추정되는 새들이 발광의 몸짓을 보인 것이다. 서스펜스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이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스릴러 영화 ‘새’를 만들었다. 파란 하늘을 새까맣게 물들이는 거대한 새의 군단, 그 공포의 새 떼가 막무가내로 인간을 공격하는 ‘자연의 재해’, 어떤 이는 거기서 세상의 종말을 읽는다.

동물의 습격은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전 세계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광우병 파동,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가는 조류인플루엔자, 마침내 ‘살충제 계란’이라는 재앙까지 인간을 덮쳤다.  학대받는 동물들이 반격이라도 결행한 것인가. 미국 작가 마크 롤랜즈는 그의 책 ‘동물의 반격(원제 Animals like us)’에 이렇게 적었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단순히 제품 테스트라는 이름으로 닭은 컨베이어벨트에 주렁주렁 목이 매달리고, 돼지는 좁은 우리 속에서 온몸이 상처로 뒤덮인 채 살아가고, 양은 불은 몸으로 다리를 하늘로 향해 벌린 채 죽어가고, 개는 끔찍한 실험을 하느라 몸뚱이가 절단된 채 죽음을 기다린다” 만목수참(滿目愁慘)이라고 해야 할까. 이 모든 것이 따지고 보면 인간의 이기적인 소비중심사회의 일면 아닌가.

살충제 계란 사태 또한 그런 맥락에서 접근하지 않을 수 없다. 그야말로 고양이 이마빼기만한 ‘A4용지 닭장’에서 밀집 사육되는 닭이라니…. 움직일 수도 없을 만큼 비좁은 케이지(철제 우리)에서 키우지 않으면 계란 출하량이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져 채산성을 맞출 수 없어 어쩔 수 없다지만 이대로 ‘참상’을 방치할 수는 없다. 동물에 대한 인간의 행위는 부당한 구석이 적지 않다. 

롤랜즈는 말한다. “동물에게도 감정이 있고 통증이나 불쾌한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인간과 생물학적인 연속선상에 있는 존재다” 그렇다. ‘우리와 같은 동물’인 그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권익’이 있을 터이다. 그토록 고통 받는 닭이 낳은 알에 살충제 성분까지 들어있다니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번 사태를 두고 일각에서는 한국판 ‘침묵의 봄’을 이야기한다. 미국의 해양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은 그의 베스트셀러 ‘침묵의 봄’에서 합성살충제의 오염 문제를 지적했다. 카슨은 살충제를 비롯한 화학물질이 지구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확신했고, 화학물질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말미암은 환경오염은 결국 인간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는 이처럼 위험천만한 화학물질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그것이 숙명이라면 제대로 알고 대처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먹거리와 건강, 환경에 관한 많은 정책들은 몇몇 사람들의 정치적 이해나 불확실한 정보에 의해 왜곡되기 일쑤다. 국내에서 살충제 계란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는 살충제 성분인 피프로닐을 섭취했더라도 한 달 정도 지나면 몸 밖으로 빠져나가니 염려할 것 없다고 했다. 심지어 살충제가 가장 많이 든 달걀을 하루 126개, 평생 매일 2.6개씩 먹어도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공언했다. 

살충제 계란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사태의 근원지인 유럽에서조차 안전성을 완전히 검증하지 못한 상태다. 국민은 계속 피해를 호소하는데 정작 정책당국은 ‘문제없음’만 되뇐다면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위해소통)’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사태를 서둘러 무마하려 하기보다는 정확한 조사와 발표, 향후 대책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케미포비아(chemi-phobia)'를 일으킨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태의 여진도 아직 가시지 않았다. 그 위에 살충제 계란 파동까지 겹쳤다. 우리 일상생활은 온통 화학물질의 위협에 노출돼 있다. 화학물질 안전관리에 대한 경각심을 더욱 높여야 한다. 이번 사태에서 특히 뼈아픈 대목은 식품안전의 컨트롤타워 구실을 해야 할 식품의약품안전관리처의 수장이 국내산 계란에 전혀 문제가 없다며 서툰 초동 대응을 한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식약처는 서로 다른 말로 엇박자를 내기도 했다. 위기 대응과 관련해 항상 나오는 지적이지만 이참에 위기관리 대응체제를 보다 정교하게 가다듬어야 한다.

언제까지 계란을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정부가 아무리 안심시켜도 국민의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정부는 내년부터 산란계가 케이지, 평지 어디에서 사육됐는지 계란 껍질이나 포장에 표시하도록 하고 동물복지형 농장의 비중을 늘리기로 했다. 생산·유통·판매 경로를 밝히는 닭고기·계란 이력추적제도 2019년부터 앞당겨 실시하기로 했다. 백서도 발간할 계획이다.

부디 정부는 죄 없는 국민이 더 이상 ‘먹거리 공포'에서 헤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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