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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전통농사 지향하는 이근이 우보농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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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전통농사 지향하는 이근이 우보농장장
  • 송혜란
  • 승인 2017.01.31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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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자본주의 굴레에서 벗어난 여유로운 농부의 삶은 누구나 한 번쯤 꿈꿔 봤을 법한 인생이다. 자신이 직접 고른 작물을 기르기 위해 밭부터 일구고 씨앗을 뿌린다. 하나의 농산물이 생산되기까지 전 과정을 손수 관리하며 느끼는 희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여기, 그 삶을 꿈꾸기만 하지 않고 힘껏 부딪히며 우리의 롤 모델이 되는 이가 있다. 바로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의 최초 설립자이자, 공동체 전통농사를 지향하는 이근이 우보농장장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 고양시를 찾았다.

취재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지난해 벼 수확작업을 모두 마무리한 우보농장은 한산했지만, 올해 모내기 작업에 쓰일 볍씨 분류 작업에 한창인 이근이 농장장의 손놀림은 쉴 틈이 없었다. 인터뷰 도중에도 몸을 가만두질 못할 정도로 천생 부지런한 농사꾼임을 자랑했다.
처음 다섯 평짜리 주말농장부터 시작한 그는 올해로 농부 16년 차에 접어들었다. 우보농장을 운영한 지는 횟수로 7년째다. 농부가 되기 전에는 잡지사에 다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당시 계간지 편집장을 지낸 그는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지만 극심한 마감 스트레스에 괴로워하는 나날을 보냈다. 잡지사를 아예 인수하면서부터 광고 압박까지 받자 계절이 바뀔 때마다 기침이 나오는 계절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때였다. 여유 있는 삶에 대한 목마름이 생겼다. 일종의 도피처로서 그는 농부의 삶을 선택했다.
“도심 속 삶은 자본주의의 굴레에 있다 보니 늘 무엇인가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지요. 내가 생산한 결과물도 온전히 나의 것이 될 수 없고요. 그저 하나의 완성물이 나오는 과정 일부분에만 참여할 뿐이에요. 평생 그러한 시스템에 묶여 사는 겁니다. 일에 대한 만족감이 높을 리도 만무하지요.”

농사의 매력은

그렇다면 인생을 살면서 스스로 생산한 것을 오로지 자신의 것이라고 느낄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그는 고민을 거듭했다.
“답은 역시 농사밖에 없더군요.”
땅을 일구고, 씨앗을 뿌려 작물이 잘 크도록 관리한 끝에 우리의 입으로 들어오는 농산물…. 우리가 온전히 시작부터 끝까지 권한을 행사할 권리가 생긴 셈이다. 그 만족감은 일주일에 한 번씩도 맛볼 수 있다.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작물이 커가는 것을 볼 때는 마치 스스로가 하나의 생명을 다루는 전지전능한 신이 된 것 같아 신비로울 따름이다.
“또 하나, 농장에서는 사회 직위 막론하고 누구나 농사 초보자, 평등한 사람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고위 관직자든, 청소부든, 다 똑같은 입장에서 땀 흘려 일하며 조직으로부터의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지요. 자연 속에서 삼림욕도 실컷 하고요.(웃음)”

전통 공동체 농사

7년 전, 이 농장장이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할 때는 혼자가 아니었다. 마음이 잘 맞는 지인 세 명과 함께 운 좋게 무료로 빌린 땅 200평을 활용해 농사를 지은 게 시초였다. 다 함께 모여 땅을 일구고, 생산물은 똑같이 나누었다. 그야말로 공동체 농사였다.
“도시농업에서 공동체가 갖는 의미는 꽤 커요. 특히 저는 전통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거든요. 작물을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농사를 지었는지 살펴보면 그 답을 알 수 있어요. 그때는 화학비료도 없을 때인데…. 더욱이 여러 사람이 모이면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농사 정보를 많이 공유할 수 있지요.”
사회 각계각층에 있던 사람들이 모이면 전혀 다른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으로 손꼽힌다. 대기업 임원, 중소기업 사장, 예술가, 작가 등 각자 사회생활을 하며 쌓은 노하우나 강점을 농사에도 고스란히 적용할 수 있다. 모두 조화로울 수 있다는 것, 어찌 보면 그것이 공동체가 도시농업에서 가지는 가장 큰 의미일지도 모른다.
“옛날 우리 조상들도 농사를 지을 때 다 함께 힘을 보탰어요. 모내기 하는 날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도왔고, 또 두레, 품앗이라는 말도 있었잖아요. 농사란 기본적으로 공동체인 게 자연스러운 거예요.”
초창기 200평이었던 땅을 차근차근 1만5000평까지 늘린 그는 농사 공동체를 지향하는 조직,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를 설립하기도 했다. 고양 곳곳에 있는 각 농장의 밭장들을 뽑아 주기적으로 밭장 회의도 하고, 풍악을 울리며 시농제 행사도 주관했다. 전통농사를 지으며 얻은 각 작물의 토종 씨앗을 나누는 일이 삶의 락(樂) 중의 하나였다. 가을에는 추수제, 일 년에 한번 도시농부의 날, 모내기, 벼 베기 행사도 연 그다. 지금은 전통농법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 농사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3년 전부터 대표직을 내려놓고 필드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전통농법의 핵심은 자연의 순환이다

그가 말하는 전통농법이란 옛 선조들이 짓던 농사법을 일컫는다. 자연농법보다는 좀 더 상위 개념이다. 한반도에서 농사가 시작된 5000년 이래 우리 조상들은 순환하는 농사를 지어 연명했다. 절대 자연을 고갈시키는 법이 없었다.
“순환이라는 게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에요. 내 몸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모두 땅으로 돌려보내는 거지요. 인간의 부산물을 포함해 동물의 부산물 도두 흙으로 돌아가 그 흙이 건강하게 유지되도록 해주면 그만입니다. 옛날에는 인분을 모두 거름으로 썼잖아요. 저 역시 각 농장에 꼭 생태뒷관을 하나씩 조성해 실제 농사를 지을 때 인분을 퇴비로 쓰고 있답니다. 전통농법은 핵심은 자연의 순환이에요.”
우리나라가 콩의 원산지인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밭에 꼭 콩을 심어 자연스럽게 퇴비 역할을 하도록 했다. 농사를 짓는 흙에는 질소와 인산, 칼륨이 꼭 필요하다. 특히 질소는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는 물질인데, 이 때 박테리아가 풍부한 콩이 뿌리를 통해 공기 중에 있는 질소를 땅에 공급해주는 것이다. 콩만 심어도 땅이 비옥해지는 이유다. 이것 또한 자연 순환의 일환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강낭콩부터 메주콩, 서리태까지 이 콩들의 원산지가 모두 우리나라인 데는 그만큼 우리 조상들이 콩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좋은 흙을 만드는 데 콩은 아주 지대한 역할을 합니다. 전통농법의 기본 중의 기본, 핵심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주말농장에서 상추와 토마토 등 채소만 키우다 어느 덧 저장, 가공이 가능한 농산물을 넘어 벼농사까지 지으며 남다른 행복감을 빠져 있는 이근이 농장장. 그는 팍팍한 삶에서 해방돼 도시농부, 더 나아가 귀농을 꿈꾸는 요즘 현대인들에게도 아낌없는 조언을 전했다.
“농사가 모든 고민을 다 해결해 줄 수는 없어요. 삶이란 어찌 됐든 어떻게 사느냐, 철학에 대한 문제니까요. 특히 돈을 벌기 위해 농사를 짓겠다고 마음먹는 순간부터가 실패입니다. 돈벌이가 목적이라면 귀농에 대한 꿈은 애당초 접으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저 순환하는 삶, 농사를 통해 자급자족하고, 적게 벌며 적게 쓰겠다는 삶의 철학이 있어야 해요. 무엇보다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면 농부만 한 게 없지요.”
농장에서 주로 생강과 벼농사를 짓고 있는 그는 수많은 작물 중에 자기에게 꼭 맞는 것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저는 어릴 때부터 대나무를 보고 자라서 그런지 생강이 크면서 나는 잎이 꼭 대나무 잎을 닮은 것 같아 친근하고 좋더라고요. 생강이 저장, 가공하기도 쉬워 밭농사에서는 주로 생강을 키우고, 논농사에서는 벼를 가꾸고 있습니다. 올해는 뭐가 비싸다더라, 식의 말에 현혹되지 말고 자기가 좋아하는 작물을 심어 가꾸세요. 그래야 씨앗을 뿌리는 노동 자체가 즐거워지고, 뒤이어 따라오는 행복한 삶을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특히 한 작물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서 그 분야의 장인이 되는 것도 좋을 일이지요.”
예전에는 도시에서 어떻게 농사를 짓는지가 중요했다면, 요즘은 도시농부를 어떻게 실제 농부, 귀농으로 연결할까가 크나큰 과제라고 말하는 이근이 농장장. 더 나아가 토종 종자에 대한 나눔을 어떻게 실천할지에 대한 고민을 지속하고 있다는 그가 곧 이상적인 답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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