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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에 가고 싶다-지리산 천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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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에 가고 싶다-지리산 천왕봉
  • 백준상 기자
  • 승인 2015.02.21 2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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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꽃이 하얗게 핀 능선

어머니처럼 너그러운 산, 그 품에 안기다

지리산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한번은 가봐야 할 성지와도 같은 곳으로 통한다. 백두산, 한라산과 더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산으로, 그 깊고 장쾌한 산세에 안겨 웅혼한 기상을 배우고 싶어한다. 사실 지리산은 3개의 도에 걸쳐 있을 정도로 넓고 큰 산이라, 3일을 꼬박 걸어도 종주가 쉽지 않다. 그러나 요즘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을 당일에 다녀올 수 있는 코스가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많아지고 있다. 지리산 허리춤에 자리한 백무동이나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오르는 길이다. 종주와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지리산의 웅장한 산세를 느껴보기에 부족함이 없다. 요즘 같은 겨울에는 굽이굽이 능선을 따라 눈꽃처럼 피어난 설경이 장관이다.

글 사진 | 유인근(스포츠서울 기자)

▲ 동 틀 무렵의 지리산 풍경

백두산이 흘러 남쪽에 서려 우뚝 솟다

지리산(智異山)의 이름은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조선시대에는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불렸다. 백두산이 흘러 남쪽에 서려 우뚝 솟았다는 뜻이다. 백두대간의 중요한 줄기라는 의미이며 하늘과 소통하는 신성한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리산은 우리나라 국립공원 1호(1967년 12월)로 지정된 산이다. 높이로는 남한에서 한라산 다음이며 국립공원 가운데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무려 전라남도 구례군, 전라북도 남원군, 경상남도 산청군 등 3개의 도와 5개의 군, 그리고 15개의 면에 걸쳐 있다. 한라산 국립공원의 3배 크기로, 천왕봉을 주봉으로 서쪽 끝의 노고단, 서쪽 중앙의 반야봉 등 3봉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로 100여 리의 거대한 산악군을 형성한다. 그 깊고 넓은 품으로 거기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숱한 애환을 품고 도닥여준 어머니의 산으로 비유되곤 한다.
옛 선인들은 지리10경(智異十景)으로 노고단의 구름바다(老姑雲海), 불일폭포, 반야봉의 해넘이(般若落照), 피아골의 단풍(稷田丹楓), 벽소령의 달(碧沼明月), 세석의 철쭉, 연하천의 선경(煙霞仙境), 섬진강의 맑은 흐름(蟾津淸流), 칠선계곡, 천왕봉 해돋이(天王日出)를 꼽고 있는데, 그 다양한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즐겼다고 한다.
비록 지리10경은 다 보지 못하더라도 지리산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천왕봉은 꼭 한번은 오르리라, 오래 전부터 다짐하고 있었지만 쉬 길을 떠날 수 없었다. 구례 화엄사에서 시작해 노고단, 반야봉을 거쳐 천왕봉에 오르는 종주 코스는 꼬박 3일은 잡아야 하는 너무 멀고도 험한 길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 대학시절 친구들과 종주 길에 나선 적도 있었다. 하지만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 낑낑대며 오르고는 그만 질려 천왕봉을 보지도 못하고 뱀사골로 하산한 쓰라린 기억이 있다. 그 때문인지 천왕봉은 언제나 숙제처럼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그러던 차에 알게 된 것이 백무동 코스다. 천왕봉을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다는 이야기에 마음으로 쾌재를 불렀다. 종주는 아니지만 그렇게라도 천왕봉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

해일처럼 밀려오는 산맥과 연봉들

천왕봉의 하루 등정이 가능해진 것은 지리산 허리춤인 함양군의 백무동이나 산청군 중산리의 산골 마을에서 출발하는 최단 코스(12.3km)의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하루 산행이라고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서울을 기준으로 무박 2일 코스다. 서울에서라면 동서울 터미널에서 출발해 백무동이나 중산리로 가는 고속버스를 타야 한다. 자정 즈음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면 백무동에 도착해 천왕봉으로 오른 뒤 하산, 다시 고속버스를 타고 늦은 밤까지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코스는 백무동에서 시작해 장터목 산장을 거쳐 천왕봉을 오른 뒤 중산리 쪽으로 내려오는 길로 잡았다. 자정에 백무동행 고속버스에 올라 잠시 눈을 붙였다 싶었더니 어느새 새벽 3시 40분쯤 버스는 종착점인 백무동에 다다른다. 온 몸이 찌뿌둥 눈을 비비며 버스에서 내릴 때면 괜한 고생을 사서 한다 싶은 후회의 마음이 살짝 들지만, 그 순간 몽롱한 정신을 반짝하며 깨워주었던 것은 백무동 밤하늘을 수놓은 무수한 별들이다.
도대체 얼마 만인가. 도시에 살면서 반짝이는 별들을 잊고 산 지 오래다. 그런데 머리 위로 쏟아지듯 반짝대는 별들은 지친 심신을 단박에 깨워 힘을 불어넣어 준다. 가슴 깊숙한 곳까지 파고드는 상쾌한 지리산 새벽 공기는 또 어떤가. 새벽 길 위에 선 나그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에너지가 분명했다.
천왕봉으로 가는 최단 코스라고는 하지만 해발 500m의 출발지에서부터 약 1400m를 더 올라야 하고 어둠 속을 걸어야 한다. 서두르기보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안전하다. 백무동 마을 뒤로 난 산길을 따라 첫번째 목적지인 장터목 대피소까지 6㎞의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약 3시간30분 정도 지루한 길을 걸어야 한다.
능선에 올라설 때까지 마른 숨을 헐떡이며 걷다 보면 어둠이 서서히 걷히면서 지리산의 웅장한 산세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등이 온통 땀으로 젖은 어느 순간이었다. 뒤를 돌아보고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어느새 동이 터오면서 저 멀리서부터 남도의 산들이 겹겹이 해일처럼 밀려오는 것이 아닌가. 비로소 지리산의 웅장함을 실감하며 벅찬 가슴으로 길을 잇는다.
능선길에 올라서면 비교적 수월하게 산행을 할 수 있다. 쉬엄쉬엄 오르다 보면 어느새 1600여m를 훌쩍 넘긴 높이에 다다르고 곧 장터목대피소에 이르게 된다. 장터목대피소에서 피곤한 다리도 쉴 겸 요기를 채우고 정비할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여기에서부터 천왕봉까지는 1.7㎞의 거리로 약 1시간20분 정도가 소요된다. 한겨울에는 반드시 이곳에서 추위를 피해 몸을 녹여야 그 다음 길을 쉽게 이어갈 수 있다. 장터목대피소 뒤로 그림처럼 펼쳐진 장쾌한 풍경도 놓쳐서는 안 된다.

거칠 것 없는 일망무제(一望無際)의 풍경

이제부터는 지리산의 진면목을 체험하며 걷는 길이다.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은 눈을 흠뻑 뒤집어쓴 주목과 소나무들이 나그네의 마음을 뺏는 곳이다. 능선에 올라서면 거센 바람을 버티고 선 고사목들이 그림 같은 풍경을 선물한다. 또 그 너머로는 산줄기를 따라 끝도 없이 유장하게 흘러가는 연봉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결코 높고 깊은 산이 아니면 볼 수 없고 힘들게 산을 오르지 않는 사람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선경인 것이다.
그 멋진 풍경에 힘든 줄도 모르고 한발 한발 숨을 들이키다 보면 드디어 하늘의 봉우리 천왕봉이 눈앞에 버티고 섰다. 천왕봉에서의 조망은 일망무제(一望無際)로 거칠 게 없다. 해발 1915m, 정상에는 늘 안개인지 구름인지 흘렀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어느덧 시야가 트이면서 장쾌하게 뻗어내려가는 산맥을 바라보니 가슴이 떨릴 지경이다. 굽이굽이 흘러가는 연봉들을 보며 웅혼한 지리산의 기상을 가슴에 담아본다.
맑고 선한 기운으로 충만한 천왕봉에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는 표지석 문구가 선명하다. 정상에 오른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표지석을 끌어안고 인증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도대체 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이 높고 험한 정상까지 올라왔나 신기할 정도다.
정상에서는 많은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 날이 저물기 전 하산을 하려면 길을 서둘러야 한다. 중산리 하산 길은 무척이나 지루한 편이다. 4시간 정도 쉬지 않고 내려가야 중산리 탐방안내소에 도착할 수 있다. 내려가는 길은 더 조심해야 한다. 경사가 급하고 게다가 요즘같은 겨울에는 눈까지 얼어붙어 있어 하산 길은 더딜 수밖에 없다. 한발 한발 힘주어 내려간다.
백무동-장터목-천왕봉-중산리 코스는 천왕봉에 오르는 가장 짧은 코스라고 하지만, 휴식과 식사 시간을 포함해 약 10시간은 잡아야 한다. 새벽산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랜턴과 등산스틱, 우의, 보온. 방풍재킷, 간식을 필수로 지참하는 것이 좋다. 체력 소모가 큰 만큼 절대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꾸준하게 오르는 것을 권한다.

@찾아가기
-동서울터미널에서 백무동행 버스가 하루 8차례 다닌다. 천왕봉까지 무박2일 등정을 하려면 자정 무렵 출발하는 버스를 타야 한다. 소요 시간은 3시간 20~30분 걸린다. 종점인 백무동 정류소에서 내리면 마을 뒤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산청군 중산리까지 가는 직행노선이 신설됐다. 서울에서는 중산리행은 금·토요일 오후 11시 30분 출발하며 중산리에서 서울행은 토·일요일 오후 3시 35분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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