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09:30 (금)
실시간뉴스
유기농에서 허용된 식물병 방지 혼합제
상태바
유기농에서 허용된 식물병 방지 혼합제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07.12 23: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진 유기농법

유기농에서 허용된 식물병 방지 혼합제
병원균으로부터 작물을 지키는 강력한 무기, 보르도액
 

▲ 보르도액을 살포한 사과 과수원 모습(사과 재배 시 보르도액을 뿌리면 겹무늬썩음병 등 각종 병해를 방제할 수 있다.)

 

 

글 | 농촌진흥청 유기농업과 홍성준(031-290-0555)

‘보르도, 보르도….’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것 같으면서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와인’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보르도(Bordeaux)는 프랑스 남부의 큰 도시로 대서양 연안의 항구도시이자 프랑스 제1의 포도주 집산지이다. 또한 보르도 지역은 기후와 토양조건이 포도 재배에 알맞고 항구를 끼고 있어서 와인의 제조와 판매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보르도 와인은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와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유명한 보르도 와인의 생산지인 보르도가 어떻게 유기농업에서 식물병을 방제하기 위해 사용되는 ‘보르도액(Bordeaux mixture)’이라는 단어에 쓰이게 되었을까? 설마 와인을 이용해서 식물병을 방제해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여기에는 아주 재미난 일화가 숨겨져 있다.

 

 
 

포도 서리를 막으려다 우연히 개발한 용액

1878년 일부 프랑스 포도나무 과수원 포도 잎의 뒷면에 흰 솜털 같은 점들이 보이면서 잎이 누렇게 변했고, 결국에는 흑갈색으로 변하여 죽기 시작하였다. 잎뿐만이 아니라 포도 과실도 감염되어 수확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병은 노균병으로 알려지며 점점 빠른 속도로 다른 포도나무 과수원으로 퍼져나갔다. 노균병은 프랑스에 나타난 지 5년 만에 전 지역으로 퍼졌으며 포도나무 재배자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랑스의 식물학 교수 Pierre Alexis Millardet는 보르도 지역의 포도밭 샛길을 거닐다가 포도나무 덩굴의 잎이 푸르스름한 막으로 덮인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런 잎들은 건강한 반면에 포도밭 안쪽에 있는 푸르스름한 막이 없는 덩굴들의 잎과 어린 포도송이에는 노균병이 심하게 감염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처럼 보기 좋은 물건을 탐내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반화된 심리인 모양이다. 당시에도 포도 과수원을 지나던 사람들이 과수원으로 들어와 탐스러운 포도송이를 몰래 따 가는 포도 서리를 했던 모양이다. 그러자 과수원 주인은 지나가던 사람들이 포도밭으로 들어와 포도를 따 가는 것을 막고자 포도가 독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하여 포도나무 덩굴에 푸른 돌(황산구리)과 생석회(포도 잎에 더 잘 달라붙게 하기 위함)를 섞어서 살포하였다고 한다.
Millardet 교수는 이런 이야기를 들은 후 즉시 실험실에서 황산구리와 생석회를 다양한 비율로 섞어 노균병에 걸린 포도나무에 처리하였고, 마침내 1885년 그는 포도 노균병 방제에 가장 적합한 혼합비율을 찾아냈다. 포도 서리를 막으려다가 우연히 개발한 이 용액은 처음 사용된 프랑스의 보르도 지방의 명칭을 따서 ‘보르도액’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니까 보르도액은 황산구리(CuSO4·5H2O)와 생석회(CaO)가 섞여서 만들어진 혼합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보르도액을 유기농업에서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
유기농업은 화학농약과 화학비료 등을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보르도액은 유기농업에서 사용이 허용된 자재이다. 각각의 재료가 천연 광물질에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에 인축과 자연에 해가 없다. 또한 보르도액은 다른 자재에 비하여 효과가 좋기 때문에 포도 노균병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식물 병해에 적용되고 있다.

황산구리와 생석회를 이용한 보르도액 제조법

 

 
 

 

 

 

 

 

 

 

 

 

 

 

 

 

 

 

 

 

 

 

 

보르도액 조제 모습(1ℓ 기준) .
(좌 사진) 왼쪽이 생석회를 물에 녹인 모습, 오른쪽이 황산구리를 녹인 모습
(우 사진) 오른쪽에 있는 묽은 황산구리액을 왼쪽의 석회유에 섞어서 완성한 푸른색의 보르도액

그럼 이런 보르도액은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사용하는 것일까. 먼저 보르도액의 제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일단은 두 가지 재료를 구매하여야 하는데 보르도액의 원료로 사용되는 황산구리(순도 98.5% 이상)와 생석회(순도 90% 이상)이다. 이 두 가지는 인터넷이나 농자재를 판매하는 곳에서 구입할 수 있다.
두 가지를 구매하게 되면 제조할 보르도액의 종류와 양을 결정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보르도액을 한 말(20ℓ) 만들려고 한다면 황산구리 80g, 생석회 80g, 물 20ℓ 그리고 고무통 또는 유리로 된 그릇(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금속제는 안 됨) 두 개가 필요하다.
먼저 한 통에는 16ℓ(만들고자 하는 총량의 80%)의 물에 황산구리 80g을 녹여서 묽은 황산구리액을 만들고, 또 다른 통에는 생석회 80g을 소량의 물로 분쇄시킨 후 나머지 4ℓ(만들고자 하는 총량의 20%)의 물을 넣어 석회유를 만든다.
마지막으로 먼저 만들었던 황산구리액을 조금씩 석회유에다 넣으면서 막대(나무재질로 된 막대)로 잘 저으면 보르도액이 완성된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는데 섞는 과정에서 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충분히 냉각을 시키면서 제조하여야 한다. 보르도액의 호칭은 물 1ℓ 속의 황산구리와 생석회의 g(그램)수에 의하여 4-4식 보르도액, 6-6식 보르도액, 8-8식 보르도액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보르도액은 보통 만든 즉시 살포해야 하며, 오래 두면 황산구리의 입자가 커져서 약효(방제효과)가 떨어진다. 보르도액을 살포하게 되면 식물체 표면에 엷은 막을 형성해서 병원균의 침입을 방지하는 예방적 효과가 크게 나타나기 때문에 병이 발생한 이후보다 병 증상이 나타나기 2~7일 전에 살포하는 것이 가장 좋다.
또한 살포를 하게 되면 완전히 건조해서 막을 형성해야 하므로 비 오기 직전 또는 직후에 살포해서는 안 된다.
포도 과수원에서 보르도액의 처리 효과를 보면 거봉 포도의 경우 노균병 방제를 위해 알 솎기를 마친 6월 중순 이후 노균병 포자의 비산 초기부터 6-6식 보르도액을 10일 간격 5회 살포하면 71.8% 정도의 방제효과가 있었으며, 캠벨얼리 포도의 갈색무늬병 방제를 위해서는 5-5식 보르도액을 갈색무늬병 발생 전(6월 상순)부터 1주일 간격으로 4회 처리하면 74.6% 방제효과가 있었다. 이외에도 많은 작물의 병해 방제에 보르도액이 사용되고 있고 그 효과를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보르도액도 항상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르도액의 종류, 살포량, 살포시기, 사용방법을 정확하게 지키지 않고 잘못 살포하게 되면 보르도액은 병원균으로부터 식물체를 보호해 주는 방패가 아니라 식물체에게 도리어 피해(약해)를 주는 무서운 창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도 우리네 인생처럼 모순(矛盾)이라는 게 존재하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